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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헤지펀드 운용실적, 코로나 위기 속 남성 앞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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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리먼 브러더스가 아니라 ‘리먼 시스터스’였더라면 파산은 면했을 것이다.”

여성 모험 않고 리스크 관리 잘해 #지수 하락폭 남성보다 작아 선방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을 이끌던 2017년 했던 이 발언은 월스트리트에서 꽤 오래 회자했다. 여성이 주도하는 회사였다면 파산이라는 극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이다. 모험을 선호하는 월스트리트 특유의 남성성이 리먼 사태를 촉발했으며, 위기관리 측면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여성 운용 헤지펀드 실적 더 좋았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코로나19’ 이후 여성 운용 헤지펀드 실적 더 좋았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증시에 메가톤급 충격이 가해지면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이 또 한 번 증명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코로나19 위기에 헤지펀드 업계에서 여성 펀드매니저들이 남성 경쟁자를 이겼다”고 보도했다.

FT가 인용한 헤지펀드 정보업체인 HFR에 따르면, 주요 헤지펀드의 투자실적이 반영되는 HFRI500펀드종합지수는 지난 1~4월 5.5% 떨어졌다. 반면 여성이 운용하는 헤지펀드의 실적을 반영하는 HFR여성지수는 같은 기간 3.5% 하락하는 데 그쳤다. 특히 뉴욕 증시 시가총액의 3분의 1이 날아가며 시장이 요동쳤던 3월 한 달간 HFR여성지수의 하락률은 5.7%에 그치며 선방했다.

모니카 샤오 홍콩 트리아다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여성들이 리스크(위험) 관리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러셀 발로 애버딘스탠더드 대체투자전략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현실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승진에서 제약을 받기 때문에, 여성들은 성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평균의 남성보다 월등한 실적을 보여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 자산운용사 에버딘스탠더드에 따르면 여성이 운용하는 글로벌 헤지펀드 자산은 전체의 1%밖에 안 된다. 헤지펀드 업계에서 고위직에 있는 여성은 10.9%에 불과하다. 금융정보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헤지펀드 업계에서 여성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8.8%인데, 법률·조직 운영·마케팅 등 미들 오피스나 백 오피스로 배치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FT는 업계에 대해 “나이든 백인 남성이 중심인 곳(male, pale and stale)”이라고 표현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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