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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동반자살 시도한 두 엄마···판사는 법정에 함께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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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법원. 연합뉴스 TV 캡처

울산지방법원. 연합뉴스 TV 캡처

어린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아이를 살해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엄마 2명이 법정에 함께 섰다. 재판부는 "동반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라며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1일 울산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의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겨진 A(42·여)씨와 B(40·여)씨에게 지난달 29일 징역 4년씩을 선고했다.

만 2세 아이 살해...착화탄 피워

A씨는 지난 2015년 현재 남편과 재혼을 하고 2016년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다툼이 잦아졌다. 임신 이후 생긴 우울증은 악화했다. 2018년 12월 중순 A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만 2세였던 아이와 함께 있던 방에서였다. 착화탄을 피우고 잠이 들었다.

남편이 뒤늦게 이들을 발견했을 때 아이는 호흡과 의식이 없었다. A씨 역시 심장과 호흡이 멈추는 등 위중한 상태였다. 사흘 만에 의식을 되찾은 A씨에게 후유증은 남았다. 당시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고 언어 장애를 보이기도 했다.

사건 당시 A씨는 "아들에게 미안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숨진 아들을 언급할 때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양육부담으로 자폐성 발달장애 9세 딸 살해  

B씨는 2019년 8월 당시 9세 딸을 살해했다.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딸은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양육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우울증을 앓던 B씨는 남편마저 공황장애 등으로 휴직과 입원 치료를 반복하게 되자 범행을 결심했다.

B씨는 당시 딸이 처방받아 먹던 약을 딸에게 한꺼번에 먹였다. 자신도 약을 먹었다. 딸은 결국 사망했다. B씨는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으며 살아남았다.

“동반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아동학대 범죄일 뿐”

A씨와 B씨의 재판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재판부는 선고일을 같은 날로 잡아 두 피고인을 함께 불렀다.

재판부는 "유독 우리 사회에서 이런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원인으로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게 종속돼 있다'는 그릇된 생각과 그에 기인한 온정적 사회적 분위기가 꼽힌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에 숨겨진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내야 하며,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발생 원인을 부모의 무능력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할 수 없고, 이런 범행에 대한 온정주의의 기저에는 아이들을 굳건하게 지지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없다는 불신과 자각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보호를 위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정비하고, 무엇이 이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하게 했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면서 "이번에 숨진 아이가 동반 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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