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롤모델' 아마존 먼저 당했다···주문 늘수록 위험한 직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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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쿠팡의 '롤모델' 미국 아마존도 코로나19 딜레마에 빠져 있다. 주가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물류창고 직원들의 코로나 감염 대응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반(反) 아마존' 정서가 퍼지는 분위기다.

지난 4월 29일 미국 워싱턴 주에서 노동 운동가들이 아마존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29일 미국 워싱턴 주에서 노동 운동가들이 아마존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의 'IT·유통 공룡' 아마존이 온라인으로 연례 주주총회를 열었다. 주총에선 창고 근로자 처우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주주들은 아마존 경영진에게 "노동자들의 안전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에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생명선'이나 다름 없었다"며 "코로나 대유행 속에 노동자를 보호해야할 필요성을 재빨리 깨달았다"고 답했다.

아마존은 나스닥에서 코로나19 대장주로 꼽힌다. 폭증하는 온라인 쇼핑과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기대로 역대 최고 주가를 경신하고 있다. 3월초 주당 1600달러 선이던 주가는 5월 들어 240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실업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14.7%를 기록 중이지만, 아마존의 일자리는 오히려 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온라인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아마존은 17만 5000명을 신규 채용했다. 시급도 2달러씩 올렸고, 무급 휴가제도 4월말에 끝냈다. 물류창고·배송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천하의 아마존도 코로나19를 피하진 못했다. 노동량이 급증한 물류창고에서 터졌다. 지난 3월 19일, 직원 10만명 채용 계획을 밝힌 지 사흘 만에 뉴욕 퀸즈 물류창고에서 첫 코로나 감염자가 나왔다. 이후 물류창고 70여 곳에서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다. 3월 31일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첫 사망자가 나왔다. LA타임즈는 27일 "지금까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만 1000건 이상 코로나 감염사례가 발생해 8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 배달 직원이 미국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 상품을 배송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마존 배달 직원이 미국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 상품을 배송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마존에 비난이 쏟아졌다. 물류센터는 좁은 곳에서 다수가 모여 일하는 환경인데, 교대 근무가 빈번했고 확진자가 나온 물류창고의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아마존이 방역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망한 아마존 직원의 유족은 CNBC와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확산하는 데도 아마존이 마스크 없이 근무를 시켰고, (창고 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마존은 "거리유지, 연장 휴식, 잦은 소독 등 직원의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해왔다"며 반박하고 있다.

물류창고발 코로나 감염이 늘자 아마존 내부 갈등도 심해졌다. 3월 말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의 물류창고(JFK8) 직원 100명이 방역과 유급휴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게 대표적. 파업을 주도한 직원은 2시간 만에 해고됐다. 4월 중순엔 '물류창고 근로자를 위해 병가·재난 수당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부 이메일을 돌린 직원 2명과 '창고직원과 온라인 토론'을 추진한 직원도 해고됐다.

뉴욕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서 직원을 보호해 달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뉴욕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서 직원을 보호해 달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임원마저도 이런 흐름에 불을 붙였다. 5월 초 아마존웹서비스 부문의 팀 브레이 부사장이 '잘 있어라, 아마존'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남기고 퇴사했다. 코로나 감염 대처 문제를 제기한 직원들 해고가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코로나19 공포에 떨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내부고발자들을 해고한 아마존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아마존이 코로나 확진자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미국 내 175개 물류창고를 운영하는 아마존은 전체 확진자 숫자만 직원들에게 문자로 통보하고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데이브 클라크 아마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아마존 내) 감염 사례는 전체 지역 감염률과 비례하기에 숫자 공개가 유용하지 않다"며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메사추세츠 등 13개 주 검찰은 5월 초 '코로나 관련 감염자와 사망자 데이터를 공개하라'며 아마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 연방 하원도 물류센터 직원 근무환경, 안전 상태에 대한 당국의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7일 '아마존의 큰 실패(Amazon’s Big Breakdown)'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코로나가 노동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아마존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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