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외교 회고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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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이 30년이란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는지, 중국이 거울로 삼을 만한 경험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5년 11월 13일 한국을 처음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대표 기업을 돌아본 뒤 귀국길에 수행원들에게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외교 회고록 '더 나은 세계를 위해:장쩌민 외국 방문 실록(爲了世界更美好:江澤民出訪紀實)'에 실린 내용이다.

이 책에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에 이어 중국의 3세대 지도부의 리더였던 장쩌민 시대까지만 해도 끈끈했던 중국과 북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일화도 많이 소개됐다.

회고록에 따르면 90년 3월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라 최고 실력자가 된 장은 첫 해외 방문국으로 북한을 택했다.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난 장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김일성을 만난 장은 한국과의 무역대표부 상호 개설 문제를 언급하며 "이를 더 이상 미루기가 어렵다"고 말한 뒤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조선(북한)의 자주.평화 입장을 바꾸지 않으며, 결코 조선 인민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즉각 답변하지 않았지만 6개월 뒤 베이징 방문 때 "만약 중국이 남조선과 무역대표부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겠다"며 이를 양해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국과 한국은 92년 8월 24일 수교했다.

덩샤오핑이 자신의 뒤를 이을 장쩌민을 김일성에게 소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덩이 장쩌민에게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넘겨주기로 발표하기 하루 전인 89년 11월 5일. 김일성은 베이징을 비공식 방문했다. 당시 85세였던 덩은 베이징역에 도착한 북한 열차에 노구를 이끌고 손수 올라 김을 맞았다. 덩은 정중한 목소리로 장을 김일성에게 소개하며 "앞으로 김 주석은 장쩌민 동지와 자주 만나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가운데에선 김일성이 장의 주석 승계를 가장 먼저 알게 됐다는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1년 9월 방북한 장쩌민에게 서울 답방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 뒤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승리하자 국제정세 변화를 예상하고 답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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