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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규명위해 공소시효 배제…문 대통령, 남아공식 해법 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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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문재인

“이제라도 용기를 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다.”

“만델라, 인종차별 고백하면 사면” #청와대 “공소시효 문제는 국회 몫” #통합당 “위헌 여부 살펴 정리해야”

문재인(얼굴) 대통령의 5·18 40주년 기념식 연설의 핵심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 문장을 꼽았다. “취임 첫해부터 해 온 말이자 문 대통령의 일관된 철학”이라면서다. 기념일 이튿날인 19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고백과 용서’의 의미를 재차 설명했다. 5·18 진상 규명의 프로세스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 모델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60년대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조사한 기구로,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설치했다. 1995년 12월부터 1998년 7월까지 활동하면서 2만1000여 명의 증언을 들었고, 이를 토대로 공소시효를 배제한 채 가해자 7512명을 조사했다. 상당수가 처벌됐지만 849명은 사면됐다. 문 대통령은 “진실화해위는 공소시효를 배제해 처벌하고 진실을 고백하면 사면했다”는 취지로 참모들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40년 전의 5·18 민주화운동 진상 조사 과정에서도 논란이 될 공소시효 문제에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적용 배제 방식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 대변인은 “앞으로 5·18 진상조사가 이뤄질 텐데 공소시효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국회의 몫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소시효나 처벌과 무관하게 5·18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했고, 지만원씨는 여전히 5·18이 폭도들에 의한 폭동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며 “진실을 고백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역사 왜곡과 음해가 일부에서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5·18 진상 규명에서도 가해자가 먼저 고백해야 진상 규명과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 좌우에 KBS·MBC 사장 … 청와대 “KBS 왜곡보도 사과, 이게 진실 고백” 

문 대통령이 전날 기념식 연설에서 “전남도청에서 쓰러져 간 시민들은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강 대변인은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고 윤상원 열사가 계엄군이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이기 하루 전이었던 5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고 한 표현을 인용하면서 윤 열사의 믿음대로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가 됐다고 응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기념식에서 KBS·MBC 사장은 문 대통령의 헌화·분향 때 좌우에 함께 섰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18 당시 광주 MBC·KBS 등이 불탄 사실을 언급하며 “KBS는 어제 뉴스 시간에 당시 상황을 방송하면서 왜곡 보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게 진실 고백과 화해의 작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의 드라이브는 국회에서 논의될 5·18 관련 법 개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특별법 개정 필요성에 관해 전향적인 입장에서 진실 발견을 위한 장치들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전문가 의견이나 공청을 거치면서 우리 헌법 체계에서 위헌인지 등을 치열한 과정을 거쳐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의 입술이 부르튼 모습이 포착된 것과 관련해 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튼 것이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대통령은 ‘피곤하지 않았다. 왜 부르텄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싣는 개헌안을 다시 발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은 없다. 문 대통령도 ‘언젠가 개헌이 된다면’이라고 한 것처럼 지금은 국난 극복을 위해 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답변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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