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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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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1991년 4월, 부산 하단동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에 낯선 장비를 갖춘 부스가 설치됐다. 장비는 가라오케 기계를 개조한 것이었다. 동전을 넣고 노래를 고르면 연주가 나왔다. 모니터의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한국 최초의 노래방 기계다. 한 달 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민락동에 이런 부스를 여러 개 갖춘 하와이비치노래연습장이라는 업소가 문을 열었다. 앞서 1979년 부산 남포동에는 가라오케 기계를 갖춘 술집들이 있었다. 하지만 노래 자체가 목적인 노래방은 이때 시작됐다. 2005년 3만7000여개로 정점을 찍은 전국 노래방 수는 지난달 기준 3만2000여개다.

이노우에 다이스케(井上大祐·80)는 일본 고베의 한 술집 악사였다. 손님이 그에게 회사 여행에 동행해 반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그는 반주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줬다. 그는 여기서 착안해 1971년, 카 스테레오와 앰프를 개조해 세계 최초의 가라오케 기계를 만들었다. 8트랙 카트리지 테이프를 사용한 이 기계를 ‘에이트주크’(8JUKE)로 이름 붙였다. 이런 기계를 통칭해 ‘가라오케’(カラオケ)라 불렀다. ‘비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から)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앞 두 글자를 합성했다.

이달 초 황금연휴 기간, 서울 이태원 클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의 발원지였다. 4차 감염 사례까지 나왔다. 클럽을 방문했던 1차 감염자가 서울 관악구의 노래방을 찾았다. 비슷한 시각 같은 곳에 있던 사람이 2차 감염됐다. 2차 감염자를 서울 홍대 주점에서 만난 직장 동료가 3차 감염됐다. 이어 3차 감염자 딸이 4차 감염됐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감염자가 비말을 날렸던 좁고 폐쇄된 노래방은 코로나19 재확산의 중요 경유지가 됐다.

이노우에는 2004년 ‘패러디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Ig)노벨상 평화상을 받았다. 선정 이유는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 공존을 이룩한 공로’였다. (잘하든 못하든) 남의 노래를 듣는 건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긴 하다. 그런 인내심을 좀 더 발휘한다면 지금의 ‘거리 두기’에 따른 불편함도 이겨낼 수 있다. 클럽을, 노래방을, 잠시 아껴두자. 모두 함께, 더 신나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날들을 위해서.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