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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의 나공㉖]'30m 하늘서 불길로 뛰어내린다' 고성 산불 때려잡은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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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불이 나면 피해야 하는데, 불길로 뛰어드는 공무원이 있다. 특히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소속 공중진화대다. 공중진화대는 이름에 걸맞게 하늘에서 출동한다. 헬기 레펠(밧줄 타고 하강) 방식으로 산 정상에 뛰어내려 산불을 잡는다. 소방관과 달리 산불만 전문으로 좇는다.

지난 1일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을 조기 진압한 것도 이들 진화대였다. 진화대가 출범한 2002년 3월 합류해 강원 양양 낙산사 산불(2005년), 강원 강릉ㆍ삼척 화재(2017년), 강원 고성 산불(2019ㆍ2020년) 등 대형 화재 현장을 지킨 18년 경력 ‘베테랑’ 김세동(44) 강릉 산림항공관리소 임업주사보에게 진화대 얘기를 들어봤다.

김세동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 고성 산불 현장에서 헬멧을 고쳐쓰고 있다. 산림청

김세동 산림청 공중진화대원이 고성 산불 현장에서 헬멧을 고쳐쓰고 있다. 산림청

3㎡만 확보하면 30m 뛴다

끄기 쉬운 잔불이라면 진화대가 굳이 출동할 이유가 없다. 등산로도 없고 지상 인력이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산등성이가 진화대의 주요 활동 무대다. 급경사지ㆍ절벽 같은 험준한 지형이다. 여기서 갈퀴나 물 펌프 호스 같은 개인 진화 장비를 이용해 통로를 열고 불을 막는 ‘진화선’을 구축한다.

위험한 만큼 협업은 필수. 기계 조(펌프로 물을 끌어오는 역할)와 호스조(호스 운반), 살수조(실제 진화)로 나눠 일한다.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건 정기적으로 전문 훈련을 받는 이들조차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산불이 활활 타올라도 딱 3㎡ 정도 공간만 확보하면 충분합니다. 헬기가 땅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고, 나무가 높게 자라있는 경우도 많아 최소 30m 높이에서 뛰어내립니다. 땅에 닿으면 헬기는 떠나고 외로움ㆍ두려움과 싸움이 시작되죠.”

“산불은 예측 불가”

공중진화대는 얼마나 바쁠까. 그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전국에서 출동한 횟수가 372회”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간 진화일수 505일, 출동 인원 2054명, 진화시간 2413시간…. 현재도 전국에서 진화대원 88명이 하루 2~3건, 많게는 7~8건의 산불 신고를 접수해 현장으로 간다고 했다. 산불이 없는 평상시엔 등산객 조난, 실종ㆍ추락 등 사고 시 인명구조에도 뛰어든다. 각종 화재 안전 교육과 산림병ㆍ해충 방제 업무도 한다.

소방관과 업무 환경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일단 산불이 나는 곳은 외졌기 때문에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렵다. 물도 호수ㆍ계곡에서 끌어와야 할 경우가 많다. 호스 길이만 1㎞ 이상이다. 그는 “20L들이 등짐 펌프에 물을 담아 이동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산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이다.

“산불을 끄기 어렵다는 건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란 뜻입니다. 게다가 칠흑 같은 밤에 돌이 구르고, 나무가 쓰러지는 돌발 상황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낙엽을 긁거나, 땅을 파서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 껐다고 생각한 불씨가 멀리 날아가 다시 산 뒤쪽부터 불붙기도 하죠. 20~30㎝씩 쌓인 낙엽 아래서 불길이 다니기도 하고요. 산불은 꺼진 뒤에도 2~3일 더 지켜봐야 합니다.”

승합차 타는 '5분 대기조'

최근 고성 산불 현장에도 출동했다. 1일 오후 9시 출동 지시가 떨어졌다. 집에서 쉬다 일어나 30분 뒤 사무실에 도착했다. 장비를 챙겨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1시. 밤새 육탄 진화한 덕분에 날이 밝았을 땐 이미 불길을 60% 이상 잡아냈다. 피해 면적은 85㏊(헥타르). 지난해 고성 산불 피해 면적(1267㏊)의 6.7% 수준이었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는 “평소 현장을 자주 둘러본 덕분에 빠르게 산불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지난해 경험을 살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5분 대기조’로 지내야 하는 건 진화대의 숙명이다. 멀리 떠날 수 없고 주말ㆍ명절에도 항상 긴장하며 지낸다. 대우가 좋았던 것도 아니다. 올 1월에서야 1년 임기 기간제에서 정규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소방차 한 대도 없어 일반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이동한다. 그는 “험준한 산악 지형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전용 소방차 한 대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로지 불을 더 빨리 잡고 싶다는 집념으로 들렸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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