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의 나공㉔] "옆에 1000만장 거래" 허탕쳐도 출동… 마스크만 좇는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03 05:00

업데이트 2020.03.04 09:10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달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노출된 국민의 유일한 방패, 마스크 얘기다. 국내 마스크 1일 생산량이 1000만장 수준인데도 공급이 달린다면 유통망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마스크가 국민 개개인 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며 정부 부처 참모진을 질책했다. 마스크 제조ㆍ유통 현장에서 벌어지는 매점매석(사재기) 단속을 총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의 24시를 들여다봤다. 2009년부터 단속반에서 활약한 ‘베테랑’ 유명종 수사팀장의 2월 수사일지다.

“기존 업무 올 스톱, 마스크만 좇아라”

조사단은 평시엔 불량 식품ㆍ건강기능식품ㆍ의약품을 단속하는 곳이다. 그러다 생리대 파동, 멜라닌 사태같이 국민 안전과 관련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속 현장을 뛰는 ‘기동대’ 역할을 해 왔다. 지난 1월까지는 피트니스 업계의 불법 의약품 투약 관행을 폭로한 ‘약투(약+미투)’ 사건을 좇았다. 그러다 2월 5일 정부가 ‘보건용 마스크 및 손 소독제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를 시행하면서 ‘전시’로 전환했다.

“하던 업무를 모두 중단하고 마스크 사재기 단속에 달라붙어라.”

식약처와 공정거래위원회ㆍ경찰청 등 6개 부처 30개 팀 180명으로 구성한 정부부처 합동 단속반이 꾸려졌다. 수갑ㆍ진압봉을 받고, 현행범은 체포까지 가능한 특별사법경찰관 업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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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신고

유명종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수사팀장(왼쪽 셋째)이 마스크 사재기 현장 단속에서 압수한 마스크를 들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

유명종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수사팀장(왼쪽 셋째)이 마스크 사재기 현장 단속에서 압수한 마스크를 들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

마스크 매점매석 행위 신고센터엔 하루 평균 200건의 신고가 접수된다. 현재까지 4만 건 넘는 신고가 들어왔다. 오전 8시 출근하자마자 전날 접수한 신고부터 확인한다.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신고하고, 규모가 큰 경우 직접 현장조사에 나간다. 퇴근ㆍ휴일은 따로 없다. 신고가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5분 대기조처럼 있다가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24일 오후 8시 4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중국인들이 마스크를 대량으로 트럭에 옮겨싣고 있는데 수상하다”는 신고를 받았다. 곳곳에 나가 있던 단속반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10분이었다. 26일 밤엔 “역삼역 카페인데 옆 테이블에서 마스크 1000만장을 인천 남동공단에서 거래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단속반과 경찰 4개 조가 바로 남동공단으로 출동했다. 두 사건 모두 조사 중이다.

이런 식으로 단속반 차량 8대가 전국 곳곳을 쉴 새 없이 달린다. 2월 한 달간 역대 최대 규모 마스크 사재기(105만장) 행위를 적발하는 등 15건을 고발 조치했다.

105만장 사재기 추격전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지난달 7일 중고품 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 “마스크 105만장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제시한 가격은 14억원(개당 약 1300원). 광고가 대범했다. 글을 보자마자 구매자로 위장해 판매자와 접촉을 시도했다. 판매자는 “정말 살 생각이 있느냐” “돈을 먼저 보여달라” “먼저 입금해 달라”며 수차례 접촉 장소를 바꿨다.

결국 판매자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 따라간 끝에 경북 의성의 한 공장 창고에 도착했다. 판매자와 일행인 차량이 단속반을 미행하다 눈치채고 달아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창고에는 일명 ‘박스 갈이(택배 상자를 옮겨 담은 것)’한 마스크 박스 수백개가 가득 쌓여있었다. 조사결과 판매자는 7억원 어치 마스크를 14억원에 판매하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깊숙이 숨는 범죄

경기도 용인의 한 마스크 판매업체 창고에서 마스크 단속단이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용인의 한 마스크 판매업체 창고에서 마스크 단속단이 마스크 수량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단속을 피하기 위한 ‘박스 갈이’는 사재기 업자가 흔히 쓰는 수법이다. 온라인 주문이 늘면서 선 주문을 받아놓고 일부러 천천히 배송한 뒤 서서히 풀면서 폭리를 취하는 행위도 늘었다. 최근엔 익명 ‘오픈 카톡방’에서 마스크 수량ㆍ금액만 제시한 뒤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접선하고 현금 거래하는 식으로 한층 더 은밀해졌다. 장소를 여러 번 바꿔가며 거래하고, 실제 마스크는 별도 창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장에서 적발해도 백이면 백 “택배 작업이 늦어 재고가 쌓였다”라거나 “주문이 몰려 사이트가 마비돼 늦어졌다”고 발뺌한다.

단속반도 마스크 사재기 단속은 처음이다. 제조ㆍ판매업자에 대한 기존 정보가 거의 없는 편이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린다. ‘한탕주의’를 노리는 사람 중엔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으로 향하는 마스크가 많다 보니 외국인이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몸싸움이나 도주극도 종종 일어난다. 단속반원 안전을 위해 항상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출동하는 이유다. 신고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출동했더니 ‘마스크팩’인 경우일 땐 허탈하기도 하다.

마스크 단속 없는 날까지

지금도 현장 곳곳에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공무원이 많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하면서 국내 마스크 공급량 1000만장 중 50%를 공적 판매 물량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식약처만 해도 직원 대부분이 전국 모든 마스크 제조업체에 출장을 나가 마스크 생산ㆍ출고ㆍ판매량을 확인하는 등 비상에 걸렸다.

단속반 활동이 강화되면서 일부 업자가 사재기했던 마스크가 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는 아우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단속반은 지친 몸을 다시 한번 일으킨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마스크 하나만큼은 걱정 없이 쓸 수 있었으면. 그래서 마스크 단속반을 해체하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정부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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