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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의 나공④] 세무조사 나온 줄 알았더니 담보를 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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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호 국세청 납세자소통팀장(오른족 아래)이 한 중소기업에 방문해 민원을 듣고 있다. [국세청]

손창호 국세청 납세자소통팀장(오른족 아래)이 한 중소기업에 방문해 민원을 듣고 있다. [국세청]

“안녕하세요. 국세청 납세자소통팀에서 나왔습니다.”(손창호 팀장)
“무슨 일로 오셨죠? 우리 회사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는데요.”(한 중소기업 사장)
“세무조사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현장의 세금 고충을 직접 듣고 해결해드리기 위해 왔습니다.”(손 팀장)

손창호 국세청 납세자소통팀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에서 겪는 대화 내용이다. 소통팀은 올 1월 30일 처음 출범했다. 국세청이 주로 해온 과세ㆍ세무조사 같은 ‘공격형’ 업무가 아닌 고충 처리ㆍ민원 해결 같은 ‘수비형’ 업무만 전담하는 팀이다. 회계사 출신 손 팀장을 중심으로 세무사ㆍ미국 세무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 10년 이상 현장 조사 경험을 갖춘 조사관 등 국세청 내 ‘에이스’로 꼽히는 5명으로 꾸렸다. 독특한 팀 성격 때문에 국세청 내에선 ‘별동대’로 통한다.

국세청 ‘별동대’ 납세자소통팀 

주어진 미션은 간단하고도 어렵다. 현장을 탐방해서, 민원을 듣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일주일의 절반은 ‘현장’이 사무실이다. 지금껏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충북 오창과학산업단지, 광주 첨단산업단지같이 민원 많은 산단 위주로 업체 30여곳을 방문했다. 공격 혹은 ‘갑’에서 수비 또는 ‘을’로 입장을 바꿔 뛴 두 달은 어땠을까. 손 팀장은 “당연히 알겠거니 생각했던 세무 제도에 대해 모르는 기업이 너무 많더라”며 “기계적으로 세무를 집행하던 입장에서 ‘잘 몰라서’ 혹은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고생하는 납세자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금 포인트’ 제도 개편을 주도하는 성과도 냈다. 세금 포인트 제도는 납부세액 10만원당 포인트 1점을 줘 500점이 넘을 경우 납세 담보를 면제해주거나 세금 납부를 유예시켜주는 등 혜택을 주는 제도다. 좋은 취지지만 현장에서 ‘500점’이란 문턱을 큰 부담으로 느낀다는 점을 소통팀이 포착했다. 소통팀은 해당 민원을 정리한 뒤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 개선을 요청했다. 결국 500점 문턱을 100점으로 낮추고, 혁신 중소기업에 대해선 10만원당 2점씩 가점을 주는 식으로 바뀌었다. 악의 없는 체납에 대해선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소통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한 오창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난해 세금 포인트가 420점에 불과해 자금 사정이 어려웠는데도 세금 납부 유예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소통팀이 꼼꼼히 적어가더니 이렇게 빠르고, 쉽게 문제를 해결해 줄지 몰랐는데 고맙다”고 말했다.

소통팀을 맞는 현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소통팀이 연락하면 “방문하지 말아달라”, 방문하면 “세무조사 나왔느냐”며 꺼렸던 업체들이 소문을 듣고 반색하는 경우가 늘었다. 손 팀장은 “상담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실 이게 궁금했다’며 적극적으로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간단한 서식 작성부터 절세 방법까지 설명하느라 방문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판교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국세청은 ‘권력 기관’이라 간담회ㆍ민원실같이 형식적인 소통 창구도 꺼렸는데 소통팀은 다르더라”며 “납세자 입장에서 소통하는 데다 공짜 ‘세무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 '별동대'로 통하는 납세자소통팀. 왼쪽부터 홍소영ㆍ고수영 조사관, 손창호 팀장, 이종영ㆍ장민기 조사관, [국세청]

국세청 내 '별동대'로 통하는 납세자소통팀. 왼쪽부터 홍소영ㆍ고수영 조사관, 손창호 팀장, 이종영ㆍ장민기 조사관, [국세청]

소통팀의 든든한 지원군은 한승희 국세청장이다. 팀 창설을 지시한 그는 지난 1월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5명 팀원에게 직접 임명장을 주며 힘을 실어줬다. 당시 한 청장의 당부가 소통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했다.

“소통팀은 오로지 납세자와 소통만 고민하고 현장을 뛰십시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공공기관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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