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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싱글벙글쇼' 이제 퇴근하겠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5월 10일 상암동 MBC 신사옥 1층 가든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라디오 '싱글벙글쇼' 마지막 방송. 스튜디오 밖에서 지켜보던 청취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5월 10일 상암동 MBC 신사옥 1층 가든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라디오 '싱글벙글쇼' 마지막 방송. 스튜디오 밖에서 지켜보던 청취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 고합니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이제 퇴근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이제 정말로 안녕히 계십시오.“

10일 오후 1시 56분,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강석씨는 담담하게 고별사를 남겼다. 이날 방송은 강석, 김혜영씨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1987년 1월 두 사람이 함께 진행을 시작한 지 약 33년 4개월만이다.

평소 주말 방송은 사전 녹음으로 진행되지만 이날 방송은 오후 12시10분부터 2시까지 서울 상암동 MBC 신사옥 1층 가든스튜디오에서 생중계로 진행됐다. 방송이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스튜디오 앞에는 청취자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1층 스튜디오 밖 모니터로 중계되는 녹음실 풍경을 지켜보며 2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황진옥(57)씨는 “이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평택에서 왔다”며 “나도 눈물이 나는데 김혜영씨가 방송하다가 울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오거나 꽃다발을 들고 온 사람들도 보였다.

 강석, 김혜영씨가 2019년 1월 24일 '싱글벙글쇼' 32년째 방송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사진 MBC ]

강석, 김혜영씨가 2019년 1월 24일 '싱글벙글쇼' 32년째 방송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사진 MBC ]

오프닝에서 김혜영씨는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순간순간 가슴이 철렁철렁하고 손과 발에 땀이 났다”라고 전했다. 강석씨는 “방송이 곧 인생이라는 거창한 진심을 잊고 오늘 이 방송, 이 시간만 생각하겠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저희의 본분이다. 지난 33년, 36년과 똑같이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오프닝곡은 오랫동안 ‘싱글벙글쇼’의 시그널로 사용됐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이날 방송에는 두 진행자 외에도 가수 노사연ㆍ유현상ㆍ현숙, ‘싱글벙글쇼’를 23년간 맡았던 박경덕 작가, ‘싱글벙글쇼’를 거친 조정선 MBC 라디오국 부국장 등이 특별 게스트로 참여해 추억을 나눴다.

노사연씨는 “김혜영 씨가 첫째 출산으로 일주일 자리를 비웠다. (출산 휴가가) 한 달이었는데 2주 만에 왔다”고 말했고, 김혜영씨는 “노사연씨가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랬다”며 웃었다. 현숙씨는 “두 분이 휴가나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고생이 많았다”고 말하자 김혜영씨는 “우리는 휴가 간다는 생각을 못 했다. 강석, 김혜영의 라디오인데 우리가 어떻게 자리를 비우냐는 생각을 했다”라고 덧붙였다.

조정선 부국장은 “두 분은 출연료에 대해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고마움을 전하자 강석씨는 “IMF 당시 타 방송사에서 많이 준다며 쫓아다녔다. 출연료에 대한 건 아직도 많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2020년 1월 24일 싱글벙글쇼 강석 김혜영 33주년 축하. [사진 MBC]

2020년 1월 24일 싱글벙글쇼 강석 김혜영 33주년 축하. [사진 MBC]

김혜영씨는 “처음엔 낮 12시 시간대가 죽어있는 시간대라서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했다. 처음 와보니 광고가 4개 붙어 있더라. 그런데 어느덧 30개가 넘게 붙기도 해서 너무 뿌듯했다‘고 회고했다. 조정선 부국장은 “MBC 라디오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준 분들”이라고 치켜세웠고, 강석씨는 “그런데 왜 잘라요”라며 농담조로 받아치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인기코너였던 강석의 ’돌도사‘의 과거 방송을 다시 듣기도 하고, 청취자의 즉석 요청으로 강석씨가 배우 이대근씨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또 ‘똘이엄마’ 코너는 김혜영씨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애를 간신히 재웠는데 깨웠다‘는 항의가 들어왔다거나 지방 방송국으로 출장을 가면 두 사람을 부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해명했던 에피소드도 전했다.

이날 마지막 곡은 강석씨가 직접 고른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였다. 이날 방송 중 몇 차례 눈시울을 훔치며 감정을 억누르던 김혜영씨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청취자들이) 늘 보듬어주시고 어깨를 두드려주셔서 용기를 냈다”며 “여러분들의 밝은 미소와 박수 소리와 따뜻한 마음을 가슴 속 깊이 선물로 가져가려 한다”며 제대로 말을 잊지 못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방송이 마무리되자 진행자들은 스튜디오 유리창 밖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청취자들에 손을 흔들고 하트를 만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청취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11일부터는 그룹 캔 멤버 배기성과 허일후 MBC 아나운서가 임시로 방송을 진행한다. 배기성씨와 함께 DJ로 내정됐던 방송인 정영진씨는 ’여혐‘ 논란 등으로 결국 마이크를 잡기 전 하차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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