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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9) 사랑은 거짓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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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사랑은 거짓말
김상용 (1561~1637)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리오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강골의 열사도 사랑에는 약하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님이 날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꿈에 찾아와 모습을 보여주겠다지만 그것은 더욱 거짓말이다. 나는 상사병으로 아예 잠이 들지 못하는 데 어느 꿈에 볼 수 있단 말인가?

사랑 노래가 많지만 이런 절창이 고시조에 있다. 더욱이 이 시조를 지은 분은 강골의 정치인이요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문루에 화약을 쌓고 불을 붙여 터뜨려 순절한 열사였다. 우의정을 지낸 판논녕부사였던 그는 세자빈과 원손 등 왕족을 모시고 강화도에 건너갔으나 마지막 순간 항복 대신 자폭의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 곁에 있던 13세의 서손(庶孫) 김수전도 할아버지를 따라 불에 뛰어들어 자결했으니 조손이 함께 신명을 나라에 바쳤다.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갸륵한 효심을 기려 전후 두 분은 나란히 안장되었다.

당시 주전파로써 청에 끝까지 항전하기를 주장한 예조판서 청음 김상헌은 그의 아우이니 충절의 집안이다. 형의 비문을 아우가 지었다. 임진왜란 때의 도원수 권율은 그의 처삼촌이다. 부인과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고, 권씨 부인 사후 사계 김장생의 누이를 얻어 1남 4녀를 둔 명문가였다. 그는 광해군의 가까운 인척이었으나 인목대비가 폐비되자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낙향했다. 인조반정 이후 다시 부름을 받고 정묘호란 때는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 왕이 없는 도성을 지켰다.

유자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