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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악순환 구조 못 깨면 대형 화재 참사 또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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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화재 참사가 잊을만하면 터지고 있다.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망 40명), 2014년 세월호 참사(사망·실종 304명),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망 29명), 2018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사망 39명)가 던진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안전 뒷전인 ‘속도전 공사’가 원인 #산업현장 인명 사고 처벌 강화해야

경기도 이천 물류 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지난달 29일 폭발에 따른 대형 화재 사고로 38명이 희생됐다. 대형 사회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원인이 지적되고 정부는 다양한 사후 대책을 내놓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안전대책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까.

이천 참사는 2008년 화재와 너무 닮아 데자뷔 같다. 희생자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가족들은 망연자실이고 지켜보는 국민도 안타까워한다.

화재 감식반이 투입됐고 경찰이 수사 중이니 사고 원인은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대피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38명이 숨진 이유에 대해 벌써 우레탄 폼, 샌드위치 패널, 용접 불티가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 원인이 결합해 화재 참사를 일으켰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이천 물류 창고 공사장 화재 참사 뒤에 숨어 있을 수 있는 구조적 원인도 따져보자.

첫째,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이다. 한국은 어느 조직이든 안전관리 업무 담당자가 찬밥 취급을 받는다. 권한은 약하고 승진 기회에서도 밀리고 사고가 나면 책임만 지니까 기피한다. 안전관리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니 충분한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경우 안전관리자에게 사실상 무소불위의 강력한 권한을 준다. 안전에 문제가 된다면 아무리 급한 조업이나 공정도 중단시킬 수 있다. 안전관리자가 요구하면 사업주도 군말 없이 따른다. 하지만 한국은 사업주가 큰소리친다. 그 이면에는 안전보다 경제 논리가 먼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인명 사고를 내더라도 처벌이 너무 가볍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 소방안전관리자에 대해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형량이 강화됐다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약하다. 눈앞의 이익보다 안전을 우선시하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기형적인 하청구조와 최저가 낙찰제도다. 원청과 하청 구조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업계 관행에 따르면 원청 업체는 공사 단가를 낮추기 위해 최저가에 하청을 주고, 하청 업체는 저가로 낙찰받은 공사에서 마진을 남겨야 한다. 결국 여러 공정을 동시에 시행해 공기를 최대한 단축한다. 화재에 취약한 값싼 자재를 사용해서라도 비용을 아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건설 현장에 비일비재한 기형적인 하청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유사한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넷째,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택배 수요 급증 상황에서 물류창고 공사를 무리하게 서두르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공기를 못 맞추면 하루에도 억대의 지연배상금까지 문다고 한다. 여기에 ‘빨리빨리 문화’가 가세하면서 무리한 속도전이 참사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 우레탄 폼 작업과 용접 작업을 동시에 했다는 말이 들리는 것은 이런 정황을 의심하게 한다. 물론 코로나바이러스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화재 참사에 내재해 있을 수 있는 고질적 문제들을 풀지 않으면 ‘제3의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참사’는 또 터질 수 있다. 말로만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하면 ‘안전한 나라’는 여전히 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일당 10만원을 벌려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