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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총선의 교훈, 권력의 절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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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용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특임교수·전 중앙선관위원

김용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특임교수·전 중앙선관위원

4·15 총선은 양대 정당의 권력 무절제 때문에 등장한 비례위성 정당이라는 최대 문제를 남겼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든 결과 군소정당으로부터 18개 의석을 빼앗아 갔다.

거대 정당 횡포로 민주주의 타격 #비례위성정당 막게 법 개정해야

양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을 경우 각각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정당 득표율만큼 얻었을 거라는 가정에 따라 필자가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18석이다. 이 경우 3개 군소정당(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은 비례 29석을 얻을 수 있었는데, 두 거대 정당의 비례위성정당 때문에 11석만 차지해 18석을 손해 본 셈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에서 군소정당이 득표보다 의석이 적은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도입했다. 소선거구제는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이기기 때문에 큰 정당에 유리하다. 반면 3위 이하 군소정당의 득표는 사표가 되니 득표와 의석의 비례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큰 정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비례성이 개선되지 못했다. 이번 총선은 아무리 훌륭한 선거제도라도 정치인들이 악용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모든 법과 제도는 공백이 있고 애매모호함이 있다. 구체적인 규정도 모든 경우의 수를 커버할 수는 없다. 따라서 권력을 쥔 정치인들이 절제해야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한다. 이번처럼 1, 2당이 뻔뻔스럽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입법 미비를 악용해 입법 취지를 훼손하는 경우 민주주의는 살아남기 힘들다.

비례위성정당 때문에 18석을 손해 본 군소정당들은 총선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민주 선거에서 패자에게 ‘참을 수 없는 대가’를 부과하는 경우 패자가 승복하기 어렵다. 패자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 승자의 정치적 정통성은 위협받게 된다.

양당의 권력 무절제가 반복되면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여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행정·지방·입법 권력을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향후 국정 운영에서 독주 대신 권력의 절제가 필요하다. 여당이 권력의 절제라는 민주적 규범을 무시하고 더 많은 권력을 탐하다 급기야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소탐대실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현행대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따라서 뭔가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최소 접근법과 최대 접근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전자는 선거제도의 기본 틀 안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고, 후자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지난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정에서 본 것처럼 너무 힘든 작업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엄중한 시기에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혁에 몰두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최소 접근법이 현실적이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하기 쉬운 것은 비례위성정당을 둘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정당은 지역구 후보를 낼 수 없다”는 새 조항을 넣는 것이다.

현행 제도 탄생과정에서 100% 대신 50% 연동형이 됐고, 이번 총선에 국한해 30석만 연동형, 17석은 병립형으로 만들어 결국 누더기가 됐다.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소선거구제의 낮은 비례성 문제를 교정하려면 지역구와 비례 의석 비율이 1대 1이 돼야 한다. 당초 중앙선관위 안은 200석 대 100석이었으나 최종적으로 253석 대 47석이 됐다.

비례의석을 늘여야 하지만 지역 선거구 축소를 결사반대하는 현역의원들 때문에 쉽지 않다. 따라서 47석이라도 100% 연동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2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권력의 자제를 보여주기 바란다.

김용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특임교수·전 중앙선관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