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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침, 흰머리, 칭찬…'방역 사령관'의 100일은 짧았다

중앙일보

입력

'1월 20일 첫 브리핑 때 입었던 말끔한 양모 재킷은 오래전 일이다. 손이 많이 안 가는 의료용 재킷(※민방위복을 의미)으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갈수록 헝클어지고 눈에 띄게 희끗희끗해진 걸 보면 머리 손질을 아예 그만둔 것 같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사무실도 떠나지 않았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 첫머리에 등장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 대한 묘사다. '침착하고 유능한 관료들이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제목의 칼럼은 "일관된 솔직함과 정보에 근거한 분석, 냉정함을 잃지 않는 침착함은 초조한 한국 국민에게 강력한 진정제"라고 표현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을 수습한 정 본부장은 국내 최고 방역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코로나19 대응 최일선의 정은경 본부장

'방역 사령관'이 바삐 움직이는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100일이 지났다. 머리 절반을 뒤덮은 흰머리와 수척해진 얼굴, 달라진 확진·사망자 통계가 흘러간 시간을 보여준다.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뒤 정은경 본부장은 거의 매일 TV에 얼굴을 비쳤다. 일반 국민으로선 정 본부장의 브리핑이 곧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흰머리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흰머리가 선명하다.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정 본부장의 행동과 발언은 큰 영향력을 가진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초반 감염 예방을 위한 '기침 예절'을 수차례 보여줬다. 손이 아니라 팔뚝 옷소매로 가려야 한다는 걸 반복 설명했다. 예시에만 그치지 않았다. 실제로 브리핑 도중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때도 '정석'대로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브리핑, 국회 등에서 손으로 가리고 기침하면서 논란이 된 것과 대조적이다.

솔직한 생각을 밝힐 때도 있다. 정 본부장은 2월 26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의 위력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한 달 정도 역학조사와 환자 발생 양상을 보면서 가장 곤욕스러웠던 건 감염력이 굉장히 높고 전파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은경 본부장의 3월 사용 업무추진비 내역. 단 한 건이다. [자료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의 3월 사용 업무추진비 내역. 단 한 건이다. [자료 질병관리본부]

2주 전엔 정 본부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내역이 공개되기도 했다. 3월 한 달 동안 민간전문가 자문회의 커피 구입비로 5만800원을 쓴 게 전부다. 2월 사용 건수도 3차례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정 본부장도) 휴식이 필요하지만 쉰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잠깐 여유가 생겨 질본 근처 숙소에 빨리 들어가는 날도 업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작 본인은 말을 아낀다. 2월 24일 브리핑에서 기자가 몸 상태 등을 묻자 "방역대책본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잘 견디고 (일을) 잘 진행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그 대신 주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대구·경북 의료인들은 코로나19 대응의 진정한 영웅"(1일 브리핑)이라고 치켜세우는 식이다. 10일 브리핑에선 WSJ 칼럼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도 나왔다. 잠시 머뭇거린 정 본부장은 "민관 협력, 사회적 연대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많은 관계자에게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월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기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2월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기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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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일일 신규 환자가 10명 안팎으로 줄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는 정 본부장의 경고는 첫날과 다를 바 없다. 이달 들어 조용한 전파 가능성과 겨울철 재유행 위험 등을 수차례 언급했다.

국내 첫 환자 발생 99일째인 27일, '100일 평가'를 부탁한 취재진에게 이렇게 답했다.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한 줄로 평가를 한다면 '국민들과 의료진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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