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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초기 나도 쿠폰 받아" 마스크 1000장 나눈 美한인식당

중앙일보

입력

“식사 안 해도 드려요.”

[코로나 생존기]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역에서 아내와 함께 국수 전문점을 운영하는 미국 이민자 피터 황(41)씨. 지난주 그는 미리 구매해 둔 마스크·손 소독제·위생용품을 지역주민 1000여명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미국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할 조짐이 보이자 미리 구매해둔 것이었다. 2015년 아내와 함께 빈손으로 이민을 떠났다는 그는 “식사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마스크를 받아가게 했다"고 전했다.

황씨가 위생용품을 나눠주는 모습. [사진 독자 제공]

황씨가 위생용품을 나눠주는 모습. [사진 독자 제공]

확진자 80만명…"초기엔 동양인 혐오 걱정돼"

미국 확진자 수가 한국보다 많아진 3월 중순, 황씨는 “그때부터 미국도 위생용품이 부족해질 거라고 예상했다”고 했다. 황씨는 곧장 위생용품 도매업을 하는 지인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나눠드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지인은 황씨가 마스크 1000장, 손 소독제 2000개, 위생 장갑 2000매를 구매할 수 있게 해줬다.

이후 미국 내 코로나19는 확진자 80만명, 사망자 4만명을 넘겼다. 황씨가 거주하는 텍사스주는 4월 말까지 자택대피령을 내렸다. 황씨의 가게 매출은 이달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황씨는 “초기에는 미국 내 동양인 혐오범죄도 잦았다"며 "손님들 중 절반 정도가 한인인데, 마스크를 사지 못할까 걱정이 됐다”고 했다. 그는 "물론 가게를 찾는 모든 인종의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무료로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황씨가 나눈 위생용품 키트. [사진 독자 제공]

황씨가 나눈 위생용품 키트. [사진 독자 제공]

황씨 부부는 4월 9일부터 열흘간 마스크 1000장, 위생 장갑 1000개, 손 소독제 1450개를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남은 손 소독제 550개는 지역 관공서로 보냈다고 한다. 황씨는 “마트에서는 위생용품이 자취를 감췄고, 아마존 사이트에 주문하면 몇 달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 사용할 마스크 2~3장 정도는 남겨뒀다"며 "추가 구매를 진행 중이고 두 번째 나눔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진에게 도시락 기부 캠페인도 준비" 

2015년 연고가 없는 미국 댈러스로 이민을 떠난 황씨 부부는 미용실, 세탁소 등에서 일하며 밤에는 우버(공유 택시) 기사로 일했다. 아내가 임신해 황씨 혼자 일을 할 때는 주 정부에서 빈민층에게 지급되는 음식 쿠폰을 받았다. 황씨는 “음식 쿠폰을 깜빡 잊고 안 가져온 걸 알고 계산대에 올려 둔 물건을 허겁지겁 빼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분이 계산을 해주셨다”고 했다. 그 여성은 “저도 예전에 이런 상황을 겪었고, 당시 제게도 누군가 나눔을 해주셨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씨(왼쪽 둘째)와 가게 직원들. [사진 독자 제공]

황씨(왼쪽 둘째)와 가게 직원들. [사진 독자 제공]

황씨는 미국 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나눔을 준비하고 있다. 황씨는 "식당 주인으로서 보건당국의 지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며 "여력이 닿는 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나눔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푸른색 메시지를 띄우는 '라이트 잇 블루'(Light It Blue) 캠페인과 함께 의료진을 향한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황씨는 "5월에는 의료진에게 우리 가게 도시락을 기부하는 캠페인도 준비 중"이라며 "나 외에도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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