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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년간 300억 쏟는데…생명연 이상한 바이러스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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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난형 바이러스 예방 치료 원천기술 개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이 올해부터 착수한 연구 과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전에 정부가 연 30억원씩 10년간 총 3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생명연 안팎에선 해당 연구 예산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구 책임자의 자질, 기존 과제와의 중복성, 외부에 위탁한 연구 과제 등까지 모두 논란 투성이다.

생명연이 정부에 제출한 '국가 재난형 바이러스 예방ㆍ치료 원천기술 개발' 계획서에 소개된 추진 체계 개념도. [사진 윤상직 국회의원실ㆍ생명연]

생명연이 정부에 제출한 '국가 재난형 바이러스 예방ㆍ치료 원천기술 개발' 계획서에 소개된 추진 체계 개념도. [사진 윤상직 국회의원실ㆍ생명연]

생명연 관계자는 13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난해 상반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예산 요구서를 제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며 “보통 연구 과제를 제출하면 생명연이 검토 후 정부에 제출해 심사를 거쳐 예산을 타오는 일반적인 절차와 달랐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이었는데 시급하다는 이유로 사업성 검토도 없이 예산이 배정됐다”고 말했다.

①정직 1개월 처분받은 이가 연구 책임자

연구 책임자인 부 모(59) 책임연구원을 둘러싼 자질 논란이 가장 뜨겁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윤상직 미래통합당 의원이 생명연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부 책임연구원은 2012년 바이러스 감염대응연구단 단장 시절 생명연 감사부에 부정 행위가 적발돼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참여 연구원을 대상으로 연구장려금을 지급한 뒤 랩 통장으로 되돌려 받아 공통 운영 경비로 집행했다는 이유다. 생명연 관계자는 “1개월 정직 처분은 파면 다음 수준의 중징계”라며 “연구비를 부정 사용해 징계를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거액의 연구비를 통째 맡길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여기에 부 책임연구원의 임기가 3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10년간의 프로젝트를 맡긴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조인묵 생명연 기획예산실장은 “과거 징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바이러스 연구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사업을 맡긴 것”이라며 “정년 후엔 다른 후임자를 선정해 사업을 이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②연구 과제 중복성 문제

윤 의원이 확보한 과제 계획서 내 중복성 검토 결과서(NTIS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과제는 10개의 기존 수행 과제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ㆍ2012년에 부 책임연구원 본인이 수행한 과제와의 유사도가 64.4%에 달했다. 학계 관계자는 “이 정도 유사ㆍ중복도라면 국가 과제에 접수조차 못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실장은 “예산 심의를 받을 때 중복성 검토를 했고, 문제가 없다는 판단하에 예산을 배정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가 재난형 바이러스 예방ㆍ치료 원천기술 개발 과제의 유사과제 검색 결과. [사진 윤상직 국회의원실ㆍ생명연]

국가 재난형 바이러스 예방ㆍ치료 원천기술 개발 과제의 유사과제 검색 결과. [사진 윤상직 국회의원실ㆍ생명연]

③감염병센터 정직원 3명뿐

연구 인력 구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생명연 내부 4인·외부 4인으로 구성된 신규사업 선정 평가위원회는 해당 연구에 대해 “연구비가 한 해 30억원이나 되는 기관의 주요 사업인데 참여하는 정규직 연구원이 13명에 불과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구 과제가 선정된 후 3월 기준으로 해당 연구에 참여하는 정직원은 부 책임연구원을 포함해 14명으로 늘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감염병연구센터 소속 정직원은 부 책임연구원을 포함해 3명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정직원은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원이다.

④7억5000만원 외부 위탁 과정

연구 계획서에 첨부한 외부 위탁 과제 선정 과정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계획서는 3개의 외부 위탁 과제를 선정하면서 7억 5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연구 계획서에 첨부된 외부 위탁 과제의 계획서는 A4 용지 한장 분량씩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학계 관계자는 “각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교수들에게 ‘묻지마 위탁’을 맡긴 것”이라며 “실질적인 성과는 위탁 과제를 통해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꼼수”라고 비판했다.

생명연 주변에선 “전체 예산의 파이가 정해져 있는데 해당 과제가 예산을 독식하면 코로나19 등 다른 당면 과제에 가야 할 정부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학계에선 생명연이 수행하는 연구 과제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립대학 교수는 “생명연이 선임한 평가위원들이 생명연 과제에 부적격 판정을 내리긴 쉽지 않다”며 “생명연 연구에 대한 독립적인 심사와 외부 감사 등의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상직 의원은 “10년간 3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과제인데 연구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며 “바이러스 치료 등 민간 랩이 활성화돼있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생명연에 정부 예산을 투입한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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