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하다 소송당할라···교사 기죽이는 ‘저작권 사냥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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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6일 대전 서구 둔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온라인 개학을 앞두고 6일 대전 서구 둔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온라인 개학을 앞둔 교사들이 '저작권법 위반' 우려에 떨고 있다. 온라인 강의에 대한 저작권 규정이 복잡해 자칫 법을 어기거나 배상금을 물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학교 교육에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강의를 내보낼 경우 규정이 엄격해진다. 온라인 강의는 인터넷에 자료가 남기 때문에 배상금을 노리고 활동하는 '저작권 사냥꾼'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경기도의 한 고교 교사 A(33)씨는 "온라인 수업을 처음 하다 보니 저작권 위반에 대한 걱정이 크다"면서 "교사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이나 연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저작권 규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충남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쌍방향 수업의 경우 유튜브를 이용하려는 선생님이 많은데,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곳이라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라는 문제 제기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이런 걱정 때문에 단방향 수업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는 앞서 온라인 개강을 시작한 대학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전남대 자연대학은 홈페이지에 있는 화학과 강의자료를 모두 삭제했다. 일부 사진과 글꼴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사용돼 저작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접근제한·복제방지하고 음원·영상은 분량 확인해야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제공한 원격 수업 저작권 가이드라인 일부. [경기도교육청]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제공한 원격 수업 저작권 가이드라인 일부. [경기도교육청]

온라인 강의에 창작물을 학습자료로 쓸 경우 교사는 접근제한과 복제방지 조치를 하고 저작권 보호 관련 경고 문구를 강의 영상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 같은 조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시도교육청·학교마다 설명이 다르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의 한 고등학교 교사 B(35)씨는 "젊은 교사도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고, 학교마다 안내하는 방법도 달라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이라며 "온라인에 올려 놓은 자료를 다른 교사나 학생이 유출할 경우에는 책임을 뒤집어 쓸 수도 있다"고 했다.

교과서 자료를 활용하는데도 제한이 있다. 대다수 출판사는 교과서를 수업에 활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일정 기준 이상의 분량을 그대로 쓰거나 PDF파일 형태로 배포하는 것을 금지한다. 일부 출판사의 경우 음원 배포를 일절 금지한 곳도 있다.

이 같은 조치를 하더라도 저작물을 얼마나 수업에 활용할지도 주의해야 한다. 2015년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가 마련한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글의 경우 전문의 최대 10%, 음원은 20%(최대 5분), 영상은 20%(최대 15분)까지 수업 자료로 쓸 수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수업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저작권 침해 우려가 가장 큰 저작물은 글꼴이다. 일부 무료 글꼴도 사용 조건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 무료 사용 범위를 '개인'으로 한정해 학교에서 쓸 수 없거나, 문서 작성에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인쇄는 금지한 경우다.

글꼴 저작권자와 교육청 사이에 소송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윤서체'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윤디자인은 전국 시도교육청에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학교당 200만원을 배상 받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소송은 올해 초 대법원서 원고 패소가 확정됐지만, 학교에선 다시 한번 대규모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교사가 알아서' 안돼…법률지원 등 보호 대책 필요"

6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1만 커뮤니티 온라인 임명식'에서 대표 교원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6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1만 커뮤니티 온라인 임명식'에서 대표 교원에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관계자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책임을 교사에게만 미루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면서 "저작권 문제가 생길 경우 정부가 법률지원이나 자문을 제공하는 등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저작권자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격 강의에 활용된 자료에 대한 소송 제기를 자제해달라는 호소다. 초등교사노조 관계자는 "급박한 상황인 만큼 교사의 실수에 대해서는 기업이나 저작권자가 배려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에서 복잡한 저작권 규정이나 침해 우려 때문에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면서 "교사, 전문가와 논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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