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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쓰나미 온다…미 ‘전시노동위’ 같은 통합 리더십 시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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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호 08면

[코로나19 비상] 노사정 손 안 잡으면 공도동망

1000여 명의 대구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25일 코로나19 관련 정책자금 대출 상담 번호표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1000여 명의 대구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25일 코로나19 관련 정책자금 대출 상담 번호표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세계가 난리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확대하면서 사회·경제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위협은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충격을 넘어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어떠한 경제난국에도 사람들의 외출이나 모임을 금지한 적은 없다’고 평가하며 ‘현재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면 실업률이 20%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문제는 나빠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다는 데 있다(unrecognizable).

경제 안테나 #대공황·세계대전 넘는 경제 충격 #NYT “이대로 가면 실업률 20%” #고용체제 지키기 뒷받침 안 되면 #대규모 재정투입은 ‘반창고 처방’ #해고총량제로 구조조정 관리하고 #위기 헤쳐나갈 사회협약 이끌어야

심각한 곳은 노동시장이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항공, 여행, 도·소매, 해운, 물류 및 금융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만 어림잡아 600만 명이다. 항공운수·여행업은 이대로 가면 몇 주 버티기 어렵다. 휴업, 휴직, 해고는 이미 시작됐다. 미증유의 공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국은 그간 금기시해 왔던 경제정책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핵심은 돈을 인쇄해 조건 없이 나눠주는 ‘헬리콥터 드롭(drop)’이다. 며칠 전만 해도 급진적으로 보였던 경기부양 패키지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소심한 수준으로 왜소해졌다. 정책이 공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셈이다.

트럼프는 2조 달러(2500조원)를 국회에 요청했고, 독일도 7500억 유로(1020조원)의 긴급 재정을 편성했다. 프랑스는 4000억 유로, 영국은 3300억 유로의 부양책을 쓸 예정이다. 미국은 납세자 전원에게 재난수당 1000달러 지급을 발표했고, 독일은 기업약탈에 대응해 자국 기업 지분 매입과 인수를 공언하고 나섰다.

위기에 직면한 우리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고 느리다. 시장은 개점휴업이고 산업이 초토화되는 상황인데 계산만 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은 성공했을지 모르나 경제 대응은 낙제수준이다. 국회도 총선에 파묻혀 고작 11조7000억원 규모의 면피성 추가경정예산을 의결했을 뿐이다. 감염 진단의 속도가 방역의 핵심이듯 경제 위기 대응도 ‘스피드’가 관건이다. 긴급하고 급진적인 재정투입은 응급실에 누워있는 경제의 회생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서는 사회적 지원체계를 동반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위기대응이 시급하다. 이는 정부의 역량만으로는 어림없으며 노사정 공동의 위기 인식과 고통 분담의 통합적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바이러스는 국경과 계층, 지역과 산업을 넘어 확산하는데 방어와 대응 방식이 ‘각자도생’으로 흐른다면 ‘공도동망(共倒同亡)’외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싫어도 손잡아야 하고, 불쾌해도 연대해야 한다.

2차대전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1941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노사 리더들에게 전쟁 극복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전국전시생산위원회(NWPB)’를 설치해 전시경제 전환을 주도했고, 전국전시노동위원회(NWLB)를 통해 생산과 수요 유지, 가격통제 등이 가능하도록 노사관계를 관리했다. 노사정이 참여한 전시노동위원회는 미국 고용체제의 나침반 역할을 한 중요한 사회협약(social contract)을 체결했다. 그 핵심은 생산성 향상(AIF)과 물가인상률(COLA)에 기초한 임금 결정의 공식화(Wage formulas), 연금 및 건강보험 등 사용자부담의 부가급여(fringe benefits) 제도화, 노동분쟁의 사전조율을 위한 조정제도(arbitration) 도입 등이다. 현재의 위기가 전쟁의 위협을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사정의 통합적 리더십이 긴요하다. 경제가 위협받고 성장이 지체되는 조건에서 노동조합의 기득권 요구는 소득 양극화와 안전망 격차를 확대하는 촉매이며, 혁신과 고통 분담 노력을 배제한 채 해고로 비용을 관리하고 정부지원 확대만을 요구하는 기업의 선택도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투입도 노동시장 지원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반창고(a Band-Aid) 처방에 불과하다. 경사노위든 특별협의체든 미국의 전시노동위원회에 준하는 위기관리 위원회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량실업 회피를 위해 노력하되 불가피한 구조조정 비용은 노사정이 분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위기산업의 근로시간은 과감하게 단축하고 확장업종의 근로시간은 안전과 건강 보호를 전제로 자율결정이 가능하도록 유연화해야 한다. 근무형태와 작업방식, 노동과정과 근태관리 등도 차제에 근본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불가피하게 실험한 모델들(재택근무, 원격근무, 화상회의 등)이 향후 지배적 노동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취약계층이 시장충격의 버퍼로 활용되지 않도록 사용자와 조직노동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비정규직 ‘해고총량제’를 도입해 일방적 구조조정을 관리해야 하며, 취약계층의 근로조건이 보호될 수 있도록 단체협약의 사업장 내 효력확장을 의무화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근로조건과 취업규칙 변경 또한 개별 사업장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도록 자유화되어야 한다. 응급상황이 지속하면 노사정 합의로 노동시장 혈맥을 막고 있는 노동법 일부 효력의 한시적 중단도 모색해 볼 일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상상력 확대가 절실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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