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추락으로 원유개발 투자마저 줄고 있다.”
미국 에너지리서치회사인 래피드그룹 로버트 맥널리 대표의 말이다. 국제유가(WTI)가 20% 넘게 추락하는 18일 밤(한국시간) 이뤄진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 백악관에서 에너지정책을 담당했다.
-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오스트리아에 있지 않았나.
-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가 있다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에너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양쪽의 에너지 정책 담당자들도 만났다.”
- 그쪽 분위기가 어떤가.
-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OPEC 대표(swing producer)인 사우디와 비OPEC 대표인 러시아 사람들이 상대 탓을 하느라 바쁘다(웃음).”
말로 맺어진 동맹은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 사우디와 러시아가 왜 싸우고 있는가,
- “동맹이 2017년 이후 3년 정도 이어졌다. 두 나라 관계를 ‘일종의 신성동맹(a holy alliance)’이라고 불렀다. 중세 교황과 왕들 사이에 말로 맺어진 그런 동맹 말이다. 구조적으로 깨지기 아주 쉽다.”
- 왜 깨지기 쉬운가
- “경제 역사를 봐라. 카르텔 회원이 약속을 어기면 징벌할 수 있어야 한다. OPEC 협약에도 징벌 조항이 없다. 사우디-러시아 사이에 그런 장치가 없다. 두 나라는 그저 '우리는 친구'라고 선언했을 뿐이다.”
맥널리는 기자와 과거 인터뷰에서 사우디-러시아 감산합의를 ‘빈체제(Vienna Regime)’라고 불렀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사우디-러시아 사람들은 ‘10년 정도 유지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만간 붕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단 그의 말대로 됐다.
4월엔 생산제한마저 없어진다
- 누가 먼저 배신했는가.
- “사우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자 추가 감산을 제안했다. 러시아가 거부했다. 한술 더 떠 모든 생산쿼터 제한도 4월부터 지키지 않기로 했다.”
- 무슨 말인가.
- “두 나라가 극적으로 화해하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상황에 비춰볼 때 국제원유 시장이 2014년 말 이전으로 돌아간다.”
- 무슨 말인가.
- “당시까지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23개 나라가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만큼 원유를 뽑아내 국제시장에 내놓았다. 올 4월부터 그 세계가 다시 열린다. 원유전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 왜 러시아가 동맹을 깨기로 했을까.
- “내가 빈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 물어봤다. 그들은 ‘사우디와 동맹을 맺고 감산했는데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사실 산유국 석유회사들은 기름값이 떨어지면 수출량을 늘려 매출을 늘리고 싶어한다.”
사우디가 일단 우세한 판이다
- 두 나라가 다시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가.
- “유가가 떨어져 사우디와 러시아 정부의 재정상태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도 겪을 수 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나라가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 시장 쟁탈전에서 누가 승자일까.
- “사우디가 현재 개발만 해놓은 유전을 모두 가동해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다. 사우디가 개발만 해놓은 유전은 산유국 가운데 가장 많다. 반면 러시아는 많지 않다. 단기적으로 사우디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
맥널리가 말한 ‘개발만 해놓은 유전’은 바로 ‘여유생산능력(spare production capacity)’이다. 수요가 급증할 때 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 글로벌 여유생산능력은 하루 200만 배럴 정도다.
“경기가 회복하면 공급 부족으로 100달러 넘을 수 있다”
- 이제 다시 1990년대 초반 저유가 시대로 돌아가는가.
-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었다. 차량 운전시간도 줄고 항공여행은 급감하고 있다. 유가가 30달러를 훨씬 밑도는 기간이 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원유공급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불안하다.”
- 그게 무엇인가.
- “개발만 해놓은 유전이 많지 않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새 유전을 개발하는 투자도 준다. 경제가 되살아나 기름 소비가 늘면 감당하지 못해 단기적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 미국 셰일 원유는 빠르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지 않은가.
-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셰일회사들은 원유가격이 4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생산과 개발을 포기한다. 캐나다 채굴원가는 더 높다.”
로버트 맥널리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지 W 부시 집권시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에너지정책 특별보좌관이었고, 국가안보회의(NSC)에선 국제에너지 정책실장을 지냈다. 2016년엔 『원유 변동성: 유가 급등락의 역사와 미래』를 펴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