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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월 진짜 원유전쟁이 시작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가 추락으로 원유개발 투자마저 줄고 있다.”
미국 에너지리서치회사인 래피드그룹 로버트 맥널리 대표의 말이다. 국제유가(WTI)가 20% 넘게 추락하는 18일 밤(한국시간) 이뤄진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때 백악관에서 에너지정책을 담당했다.

미국 에너지리서치회사인 로버트 맥널리 대표는 저유가 시대 그늘이 미래 생산능력 감소라고 우려했다.

미국 에너지리서치회사인 로버트 맥널리 대표는 저유가 시대 그늘이 미래 생산능력 감소라고 우려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오스트리아에 있지 않았나.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가 있다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에너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양쪽의 에너지 정책 담당자들도 만났다.”
그쪽 분위기가 어떤가.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OPEC 대표(swing producer)인 사우디와 비OPEC 대표인 러시아 사람들이 상대 탓을 하느라 바쁘다(웃음).”

말로 맺어진 동맹은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왜 싸우고 있는가,
“동맹이 2017년 이후 3년 정도 이어졌다. 두 나라 관계를 ‘일종의 신성동맹(a holy alliance)’이라고 불렀다. 중세 교황과 왕들 사이에 말로 맺어진 그런 동맹 말이다. 구조적으로 깨지기 아주 쉽다.”
왜 깨지기 쉬운가
“경제 역사를 봐라. 카르텔 회원이 약속을 어기면 징벌할 수 있어야 한다. OPEC 협약에도 징벌 조항이 없다. 사우디-러시아 사이에 그런 장치가 없다. 두 나라는 그저  '우리는 친구'라고 선언했을 뿐이다.”

맥널리는 기자와 과거 인터뷰에서 사우디-러시아 감산합의를 ‘빈체제(Vienna Regime)’라고 불렀다. 그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사우디-러시아 사람들은 ‘10년 정도 유지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조만간 붕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단 그의 말대로 됐다.

 4월엔 생산제한마저 없어진다          

누가 먼저 배신했는가.
“사우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자 추가 감산을 제안했다. 러시아가 거부했다. 한술 더 떠 모든 생산쿼터 제한도 4월부터 지키지 않기로 했다.”
무슨 말인가.
“두 나라가 극적으로 화해하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상황에 비춰볼 때 국제원유 시장이 2014년 말 이전으로 돌아간다.”
무슨 말인가.
“당시까지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23개 나라가 아무런 제약 없이 원하는 만큼 원유를 뽑아내 국제시장에 내놓았다. 올 4월부터 그 세계가 다시 열린다. 원유전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왜 러시아가 동맹을 깨기로 했을까.
“내가 빈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 물어봤다. 그들은 ‘사우디와 동맹을 맺고 감산했는데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사실 산유국 석유회사들은 기름값이 떨어지면 수출량을 늘려 매출을 늘리고 싶어한다.” 

사우디가 일단 우세한 판이다

두 나라가 다시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가.
“유가가 떨어져 사우디와 러시아 정부의 재정상태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도 겪을 수 있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나라가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시장 쟁탈전에서 누가 승자일까.
“사우디가 현재 개발만 해놓은 유전을 모두 가동해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다. 사우디가 개발만 해놓은 유전은 산유국 가운데 가장 많다. 반면 러시아는 많지 않다. 단기적으로 사우디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다.”

맥널리가 말한 ‘개발만 해놓은 유전’은 바로 ‘여유생산능력(spare production capacity)’이다. 수요가 급증할 때 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 글로벌 여유생산능력은 하루 200만 배럴 정도다.

“경기가 회복하면 공급 부족으로 100달러 넘을 수 있다”

이제 다시 1990년대 초반 저유가 시대로 돌아가는가.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었다. 차량 운전시간도 줄고 항공여행은 급감하고 있다. 유가가 30달러를 훨씬 밑도는 기간이 어질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원유공급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불안하다.”
그게 무엇인가.
“개발만 해놓은 유전이 많지 않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 새 유전을 개발하는 투자도 준다. 경제가 되살아나 기름 소비가 늘면 감당하지 못해 단기적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미국 셰일 원유는 빠르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지 않은가.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셰일회사들은 원유가격이 4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생산과 개발을 포기한다. 캐나다 채굴원가는 더 높다.” 

로버트 맥널리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조지 W 부시 집권시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에너지정책 특별보좌관이었고, 국가안보회의(NSC)에선 국제에너지 정책실장을 지냈다. 2016년엔 『원유 변동성: 유가 급등락의 역사와 미래』를 펴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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