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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천지 강제수사 논란 일자 압수수색 대신 행정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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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소재 신천지예수교회 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행정조사를 마친 정부 조사단이 서류를 들고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소재 신천지예수교회 본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행정조사를 마친 정부 조사단이 서류를 들고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정확한 신도 명단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 대신 행정조사에 나섰다. 법조계 등에서는 강제수사 논란을 둘러싼 혼선과 정치 공방 때문에 그동안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천본부서 신도 명단 등 확인 #검찰선 포렌식 요원·장비 지원 #추미애가 인용한 ‘86% 찬성’ 설문 #전문가 “해당 질문 자체가 편향적”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5일 경기도 과천시 신천지 본부에 대한 행정조사를 진행해 신도 및 교육생 명단, 예배별 출석 기록, 시설 주소 정보 등을 확인했다. 신천지 제공 자료의 진위 확인 및 보강자료 확보를 위한 조치다.

김강립 중대본 1총괄조정관은 “행정조사를 통해 추가 정보 확인이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집단감염 가능성이 큰 특정 날짜 예배 참석자 명단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후 검찰과 최종 협의를 거쳐 행정조사에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강제수사 논란의 당사자들이 협의 끝에 일단 압수수색 대신 행정조사를 하는 것으로 타협한 모양새다. 검찰도 이날 행정조사에 대검 포렌식팀과 장비를 지원했다. 포렌식팀은 고의 누락 의혹이 일었던 신천지 교인 명단에 대한 복구작업 등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 명단 확보 방식에 대한 갈등은 추 장관이 지난달 28일 검찰에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검토 지시를 공개적으로 하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검찰은 “신천지의 협조를 얻으려면 강제수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중대본 입장을 확인한 뒤 강제수사를 자제했다. 지난 2일 김강립 조정관이 이 입장을 공개 천명하면서 강제수사 필요성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4일 추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능후 장관도 강제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다시 꼬였다. 중대본 공식 입장을 중대본 1차장인 박 장관이 뒤집은,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안은 정치공방으로 비화했다. 권성동 미래통합당 의원은 “초기 대응을 잘못한 정부가 신천지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지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정점식 의원도 “법무부 장관이 특정 사건에서 압수수색을 지시한 적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추 장관은 “국민의 86.2%가 압수수색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해당 조사 내용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해당 여론조사는 질문이 “정부가 신천지 측으로부터 받은 신도 명단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다음 중 어느 주장에 공감하느냐”였고, 보기로 ‘① 믿을 수 없는 명단이니 압수수색해야 한다’ ‘② 믿을 수 있는 명단이니 압수수색은 과도하다’ ‘③ 잘 모르겠다’의 세 가지가 제시됐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란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명단이 허구일 가능성을 전제했기에 유도 질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명단을 믿을 수 없더라도 압수수색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여론조사 문항은 논란 소지를 최소화해야 하므로 압수수색에 대한 찬반만 물어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애초부터 강제수사의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수사로 확보한 자료는 재판에서만 사용돼야 하며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 건 불법”이라며 “압수수색으로 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한다 해도 중대본 등에 넘겨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찰도 “중대본의 행정조사를 통한 신천지 명단 확보가 가장 실효적 조치”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정종훈·박해리·정진호·박태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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