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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살벌한 코로나19 거리…'선한 천사'가 필요할 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34)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고 초조한 날들이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빠지며, 경제상황도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벌어지는 이러한 양상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가히 글로벌 패닉 상황이다.

코로나19의 지역전파가 시작되고 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일상의 모습도 달라졌다. 5장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고, 거리와 식당은 텅 비어 있으며,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한다. 사무실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고, 누군가 기침이라도 하면 일제히 시선을 보낸다. 뜨거운 물을 마셔라, 소금물로 입을 헹궈라 등 SNS를 통해 민간요법들이 공유되고 코로나19 특보란 이름의 뉴스 프로그램이 하루 종일 방송된다.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감염병인 데다, 예방백신도 전용 치료제도 없기에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의심도 많아지고, 경계심도 높아진다.

코로나19의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일상의 모습도 달라졌다. 5장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고, 거리와 식당은 텅 비어 있으며,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한다. [사진 Unsplash]

코로나19의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일상의 모습도 달라졌다. 5장의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고, 거리와 식당은 텅 비어 있으며,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한다. [사진 Unsplash]

이런 상황에서도 치료와 방역의 최전방을 맡은 의료진과 공무원들은 사투를 벌이며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후원과 성금, 응원의 메시지 등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은 사회 각층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어난다. 비록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시민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감염병 확산 저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개인위생에 신경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말이다.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다른 나라 상황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사람이 지닌 본래의 품성에 대해 그리고 그 품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침 지난 일요일 ‘중앙 선데이’에 실린 김우창 교수(고려대 명예교수)의 칼럼 ‘세계화와 함께 창궐한 전염병, 선한 천사들이 늘어나길’도 그런 내용이었다. 역사는 결국 평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며,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의 대응은 세계가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지식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저서 『우리 본성의 보다 선한 천사들』(2011)의 내용을 언급한다. 선한 천사들이란 인간의 네 가지 품성 즉 공감 능력, 자아 절제력, 도덕적 감성, 이성을 말하며 이것들의 적극적 관여가 문제 해결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을 찾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불안은 생존에 위협을 느낄 때 나타나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불안해지면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 불안할수록 희생양을 찾아 비난하면서 선을 긋고,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은 거다. 지금 특정 집단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평상시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확진자를 비난하는 것은 건강한 행동도 아니고 본인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다. 혐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해외에서 한국인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확진자와 의료진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내가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타인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오히려 불안감이 줄어든다.”

코로나19는 감염자의 콧물, 침이 코와 입, 눈의 점막을 통해 들어와 전파되므로 밀접한 접촉을 멀리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기침예절을 지키는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사진 Unsplash]

코로나19는 감염자의 콧물, 침이 코와 입, 눈의 점막을 통해 들어와 전파되므로 밀접한 접촉을 멀리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기침예절을 지키는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사진 Unsplash]

저녁 약속이 없어지고 주말에도 집에 머물기 시작하며 TV 시청 시간이 늘었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방사수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주 종영된 ‘낭만닥터 김사부’를 챙겨 보았는데, 대사 한 마디가 마음에 꽂혔다.

‘낭만 보존의 법칙. 대부분의 사람이 존재하는 줄 알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꼭 지켜줬으면 하는 아름다운 가치들.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매 순간 정답을 찾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김사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라고 말이다.’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의 내레이션이다. ‘낭만’이란 말을 현재 상황에 비유할 수 없지만, 대사 속 ‘가치’라는 단어는 되새겨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결핍을 정신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정신상태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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