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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범의 문화탐색

태도가 디자인이 될 때,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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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전화를 받을 때 난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기도 하고 동시에 앉고 싶기도 했어.”

상식 깬 ‘안장’ 의자로 #디자인 거장의 반열에 #비싸게 팔리는 디자인 #그의 태도를 사는 것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는 ‘안장(Sella)’ 의자를 디자인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1957년 자전거에서 떼어낸 안장과 반구형 쇳덩어리를 파이프로 연결한 외다리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는 이제 실내에서도 외발자전거를 타듯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상식을 깨는 이 의자로 인해 카스틸리오니는 디자인의 다다이스트(Dadaist)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전거 안장과 쇳덩어리 받침대의 연결은 마치 초현실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이 “재봉틀과 우산이 수술대 위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읊은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이를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부르는데, 일상의 익숙한 사물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만나면서 빚어지는 우연과 전복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자이너는 예술가?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시 장면. ‘안장’의자 등 주요작들을 볼 수 있다. 권혁재 기자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전시 장면. ‘안장’의자 등 주요작들을 볼 수 있다. 권혁재 기자

디자인에서도 현대미술 못지않은 실험 정신과 전위성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이 카스틸리오니에게 감탄하는 것은 그러한 실험 정신보다 오히려 그의 태도가 보여주는 어떤 멋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카스틸리오니가 안장 의자를 디자인한 과정은 예술가가 자신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 다시 말하면 카스틸리오니의 작업에는 자신의 삶에만 충실하며 그러한 삶의 결과가 기발한 예술로 이어지는, 어떤 ‘완전한 삶-예술가’에 대한 낭만적 신비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자, 이것이야말로 근대 예술가 신화의 핵심이 아니었던가.

태도로서의 디자인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대표작 ‘안장’의자. [사진 이탈리아 자노타 사]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대표작 ‘안장’의자. [사진 이탈리아 자노타 사]

1969년 스위스 출신의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창작 과정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미술 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 예술가의 신화는 더욱 확장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예술가는 작품 이전에 그의 존재와 태도만으로도 예술가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스틸리오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태도를 디자인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의자는 완성된 디자인이고 비싼 값에 팔리는 명품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은 그의 태도, 유머와 자유로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카스틸리오니가 이탈리아적인 멋(gusto)을 하나의 몸짓(geste)으로 만들어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은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의뢰인(고객)의 전화벨과 함께 시작된다. 물론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는 사용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디자이너 자신이 최초의 사용자이자 관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디자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실 카스틸리오니의 작업도 모두 안장  의자와 같지는 않다. 그는 생활용품 메이커인 알레시(Alessi)사를 비롯한 유명한 이탈리아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이러한 네트워크 속에서 작업을 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스타 디자이너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디자인 의뢰라기보다는 차라리 요즘 예술가들이 많이 하는 협업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탈리아적인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디자이너의 태도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을 만들어내듯이, 이탈리아 디자인의 높은 수준도 좋은 의뢰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사회의 디자인이란 어디까지 생산자의 요구와 소비자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디자이너의 태도라는 것도 단지 개인적인 것일 수만은 없다. 디자이너 역시 사회적 존재로서 그러한 조건 안에서 자신에게 가능한 태도를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태도가 디자인을 만든다”라는 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 태도라는 것이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