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원하면 월세 20억 어쩌나” “안 보내면 우리 애만 뒤처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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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한 학원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이 학원은 이달 28일까지 휴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3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한 학원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이 학원은 이달 28일까지 휴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영어학원 강사 A씨(30)는 최근 자신의 강의를 직접 촬영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정부의 휴원 권고를 받아들여 대면 강의 대신 인터넷 강의(인강) 자료를 배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학원 문을 계속 닫아도 되는지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학원들, 교육부 휴원 권고에 한숨 #들킬까 봐 창문 쪽 불 끄고 수업도 #학교보다 좁아 감염 위험 더 커 #고3 학생 “불안하지만 학원 갈 것”

A씨는 “촬영과 편집뿐 아니라 자료 전달도 직접 해야 해 업무량이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인강인데 학원비를 좀 깎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학원과 학부모들이 ‘진퇴양난’의 상황이 빠졌다. 학원은 휴원과 개원 여부를, 학부모는 자녀의 학원 수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치동 등의 학원가에는 일단 휴원에 동참하는 학원이 많다. A씨는 “대치동 일대는 일단 다 휴원했다. 큰 학원이 많아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큰일난다”고 전했다. 하지만 계속 휴원하긴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현실적인 비용 문제 때문이다.

“방학 줄어 여름방학 대목도 물건너가”

대치동에만 지점 10곳을 운영하는 한 학원은 2월 마지막 주에 일주일간 학원 문을 닫았는데, 교육부 권고에 따라 휴원을 3주 더 연장하면 한 달간 학원 운영을 못하는 셈이 된다. 이 학원장은 “지점들의 한 달 임대료만 20억원이 넘는다. 수업을 안 하면 한 달 수익이 ‘0원’이 되는데 유지비를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학원 관계자도 “학원 피해에 대한 대책 없이 무조건 휴원에 동참하라는 건 ‘폐업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학교 개학이 3주 미뤄진 것도 학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 한 학원장은 “학교 휴업일이 늘어나면 방학 일수도 줄어들 텐데, 그렇게 되면 ‘대목’인 여름방학 매출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메가스터디·종로학원하늘교육 등 대형 재수 종합학원을 필두로 일부 학원들은 이번 주 들어 수업을 재개했다. 한 학원장은 “‘누가 먼저 문을 여느냐’의 싸움”이라고 학원가의 ‘눈치보기’ 분위기를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자 2일 교육부는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개학을 오는 23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3일 서울 서초구 이수중학교 정문에 ‘휴업 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자 2일 교육부는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개학을 오는 23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3일 서울 서초구 이수중학교 정문에 ‘휴업 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 현장 점검을 피해 ‘꼼수 개원’을 하는 사례도 생겼다. 학부모 박모씨는 “아이가 ‘학원 복도에 불이 꺼져 있다’며 돌아왔길래 함께 가 보니 창문이 있는 복도 불만 끄고 강의실에서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경기도 용인시의 이모(42·여)씨는 “동네 학원장이 확진자라는 소식에 학원 6곳에서 3개월치 학원비를 환불받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학교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의 김모(38·여)씨는 “영어 어학원 레벨테스트와 반 편성까지 끝낸 상태인데 지금 빠지면 가을학기나 돼야 학원에 다시 다닐 수 있다고 한다”며 “학원비는 내고 결석을 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돌봄·학습 공백 때문에 학원에 보내겠다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맞벌이 부부 박모(40·여)씨는 “인강은 저렴하지도 않은 데다 아이의 집중도도 현저히 떨어진다.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일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김모(18)양도 “학원이 수업을 재개했다. 불안하지만 고3이라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일 진행된 메가스터디의 수업에도 전체 수강생의 90%가 출석했다. 메가스터디 관계자는 “설문조사를 해 보니 90%가 등원을 희망했다.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수업을 정상화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부모도 많다. 고2 자녀를 둔 이모(48)씨는 “코로나를 생각하면 안 보내야 하지만 다른 애들 공부하는 동안에 우리 애만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또 보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원 손실 보전? 예산 투입 근거 없어

정부도 고민이다. 학원이 휴원하지 않는 한 개학 연기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학원은 학교보다 공간이 비좁아 집단 감염 위험성도 더 높다. 실제 부산에서는 여고생이 학원 강사로부터 감염된 사례도 발생했다. 하지만 휴원을 유도하려면 손실 보전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예산 투입 근거가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학원의 방역·소독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마저 근로자 5명 미만의 소상공인이 대상이라 지원을 받는 학원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성지원·전민희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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