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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침, 얼굴 튀는데···" 의료진 울린 복지부 '가운 헛발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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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이 있는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에서 물품을 들고 이동 중인 의료진. '레벨D' 방호복과 장갑, 고글, 마스크로 최대한 진료 중 침방울이 튈 공간이 없게 가렸다. [연합뉴스]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이 있는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에서 물품을 들고 이동 중인 의료진. '레벨D' 방호복과 장갑, 고글, 마스크로 최대한 진료 중 침방울이 튈 공간이 없게 가렸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현재 전국 코로나19(신종코로나) 확진자 수가 2337명으로 늘었다. 2월 1일 12명이었던 감염자 수의 194배다. 늘어난 확진자 수만큼 검사도 많아졌다. 이날 오후 4시까지 전국에서 진행된 검사는 8만 1167건이다.

현장 의료진, 복지부 '가운 대체' 비판 #"검체 채취 중 기침 많아, 감염 위험" #논란 커지자 복지부 "선택 가능" 변경 #의사들 "우리도 사람인데…힘 빠진다"

최근 검사를 진행하는 전국 각지의 선별진료소에선 검사 중 착용하는 전신 보호복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지난 26일 복지부가 '코로나19 검체채취 시 전신 보호복이 아닌 가운 착용을 권장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물품 소요량 증가 및 의료기관의 건의를 바탕으로' 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방호복을 입고 벗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방호복이 부족한 데다 검사 수요가 폭등하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외과 수술 장면. 의료진이 착용한 청색 수술복이 복지부가 지난 26일 '코로나19 검체 채취 때 착용을 권고한다'고 했던 '가운'이다. 방호복과 달리 목, 얼굴, 머리 부분 보호가 안돼, 환자의 침방울 노출위험이 큰 첨체 채취 과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상황은 기사와 직접적 관계 없음) [중앙포토]

외과 수술 장면. 의료진이 착용한 청색 수술복이 복지부가 지난 26일 '코로나19 검체 채취 때 착용을 권고한다'고 했던 '가운'이다. 방호복과 달리 목, 얼굴, 머리 부분 보호가 안돼, 환자의 침방울 노출위험이 큰 첨체 채취 과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상황은 기사와 직접적 관계 없음) [중앙포토]

'레벨D' 방호복은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흰색 방호복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감싸 흰색 우주복처럼 보인다. 반면 복지부가 언급한 '일회용 가운'은 수술실에서 무균 상태를 위해 앞으로 입고 허리에 끈을 둘러 고정하는 하늘색 수술복이다. 수술복에 마스크, 고글을 쓰면 레벨D를 입었을 때 가려지던 목, 머리, 얼굴 외곽이 가려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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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각 선별진료소에 내려온 공문. '코로나19 검체 채취 시 전신보호복이 아닌 '가운 권장'으로 개인보호구 사용 기준을 변경했다. [커뮤니티 캡쳐]

지난 26일 각 선별진료소에 내려온 공문. '코로나19 검체 채취 시 전신보호복이 아닌 '가운 권장'으로 개인보호구 사용 기준을 변경했다. [커뮤니티 캡쳐]

"검사시간 단축보다 의료진 손실이 더 커"

서울 명성교회 앞 선별진료소 현장. 검체 채취가 몰릴 때에는 방호복을 입은 채 일회용 수술복을 덧입은 뒤 수술복만 갈아입어가며 채취를 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서울 명성교회 앞 선별진료소 현장. 검체 채취가 몰릴 때에는 방호복을 입은 채 일회용 수술복을 덧입은 뒤 수술복만 갈아입어가며 채취를 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현장 의료진 사이에선 “현장과 동떨어진 지침”이라는 비판이 우세하다.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 환자 진료를 지휘하고 있는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은 “검사시간 단축으로 얻는 이득보다 의료진 감염‧격리로 인한 인력 손실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구 의료진 중 지금 22명이 감염되고 100명이 넘게 격리됐다. 검사 시간이 더 걸린다고 안전조치를 대충 할 게 아니다”고도 했다. 의료진 1명이 감염되면 접촉자까지 포함해 더 많은 수가 격리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은 감염자 수보다 몇 배가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조 원장은 “특히 대구 같은 상황에선 방호복을 도저히 구할 수 없을 때나 임시방편으로 일회용 가운을 입어야지, 지침으로 '레벨D는 필요 없다'고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아무리 입고 벗는 데 시간이 걸려도, 최전선 의료진은 무조건 레벨D 보호복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의 염호기 교수도 “대구‧경북처럼 지역 전체의 바이러스 밀도가 높은 곳은 양성환자가 방문할 확률이 높아, 검체 채취 때 무조건 레벨D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 코앞에서 기침… 답답하다고 방호복 안 입나"

선별진료소에서 직접 검체 채취를 하는 의료진의 반발은 더 거세다. 대구 지역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A(27)씨는 "'현장 의료진들이 '레벨D가 답답하다'고 해서 배려해서 바꾼 거라고 하는데, 소방관들이 답답하다고 방화복 안 입고 현장에 들어가냐"며 "20㎝ 코앞에서 기침을 맞는데, 물량 부족을 걱정해 지침을 바꾼 공무원들에게 '가운에 마스크 쓰고 채취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상북도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최모(30)씨도 “양성환자를 검사할 때는 레벨D를 입고 아닌 환자에 가운을 입으면 된다고 하는데, 눈으로 보고 양성인지 음성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선 불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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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과정, 비말을 얼굴에 그대로 맞는 셈"

보건소에 비치된 신종코로나 검체채취 키트. 코와 목 깊숙히 찔러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자극이 심해 대부분의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다. [연합뉴스]

보건소에 비치된 신종코로나 검체채취 키트. 코와 목 깊숙히 찔러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자극이 심해 대부분의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다. [연합뉴스]

코로나19 검사는 검체 채취를 위해 코와 목 깊숙한 곳의 점막을 면봉으로 훑는다. 이 과정에서 기침과 재채기가 많이 나온다고 의료진들은 설명했다.

서울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조모(32)씨는 “검체를 채취하는 긴 면봉을 15㎝ 이상 깊숙이 찔러야 정확한 검사가 되는데, 거의 100% 기침‧재채기를 해서 얼굴에 엄청 튄다”며 “비말감염인데 비말을 얼굴에 그대로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김모(31)씨도 "대구처럼 바이러스 노출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마스크‧고글‧방호복으로 얼굴부터 머리~목을 다 가려도 감염이 됐다“며 "기침, 재채기가 나야 검사가 확실하게 됐다고 안심할 정도로 깊숙이 찌르는데, 검사 현장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모르고 만든 지침"이라고 비판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의료진 보호 개념 없어"

27일 여준성 장관정책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해명 글. [페이스북 캡쳐]

27일 여준성 장관정책보좌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해명 글. [페이스북 캡쳐]

공보의(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도 26일 성명을 통해 '방역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에 방호복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27일 복지부는 "레벨D와 일회용 가운 중 선택해서 사용"으로 지침을 바꿨다.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정책보좌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WHO 권장기준과 감염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지침을 변경한 것”이라며 “의료인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원하는 경우 레벨D 보호복을 계속 지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힘이 빠진다"는 반응이다. 충남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김모(32)씨는 “일회용 가운은 입은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이 아닌데, 최일선에 있는 의료진 보호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모(34)씨는 “아직 연구도 덜 된 바이러스이고,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는 상황인데 현장 의료인력보다 효율과 예산 때문에 내린 결정처럼 들렸다"며 "의사나 간호사나 똑같은 사람이고, 바이러스에 안 걸리는 게 아니다"고 전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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