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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장사’에 내몰린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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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천인성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24부디렉터(EYE)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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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장사로 전염병 위험이 커졌다’ ‘돈독 오른 대학 탓에 한국 학생도 피해본다’ 중국인 유학생의 대거 입국을 앞두고 대학이 개강을 연기하고, 중국 학생의 ‘자율 격리’를 위해 한국 학생의 기숙사 입소가 차질 빚는다는 뉴스에 달렸던 댓글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 지난해 홍콩 시위 이후 커진 반중(反中) 정서에 어느덧 불어난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경계심과 대학을 향한 불만이 겹쳐있다.

댓글처럼 국내 대학은 유학생 유치에 매달렸다. 지난해 4월 현재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16만명(중국인 7만명)으로 5년 전(2014년 8만명)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정부도 이를 도왔다. 2015년 ‘2023년까지 20만명 유치’를 내걸고 유학생 확대 방안을 내놨고, 이듬해 인증을 통과한 대학의 비자 발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대학과 정부가 ‘의기투합’했던 이유는 뭘까. 캠퍼스 국제화, 친한(親韓) 엘리트 양성이란 명분도 있었지만, 대학이 진정 원했던 건 등록금 동결로 말라붙은 ‘곳간’을 채우는 거였다. 법적으로 등록금은 대학이 결정할 수 있지만 지난 10년간 1% 이상 올린 곳은 극소수다. 역대 정부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위해 ‘당근과 채찍’(재정 지원과 규제)을 동원해 등록금 인상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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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립대 등록금(평균 745만원)으로 2008년(741만원)과 별 차이 없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1.8%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대로선 그만큼 수입이 줄었다.

학비 부담을 덜자는 정책 취지야 나무랄 데 없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A대 총장은 “등록금이 줄면 그만큼 예산 지원이 늘어야 교육의 질을 유지할 텐데 실제 지원은 제자리”이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대학은 정부 규제가 없는 유일한 ‘비즈니스’, 유학생 유치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어학연수생을 포함해 전체 등록금 수입의 20%를 외국인에 의존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학업 능력이 검증 안된 학생까지 사설업체를 통해 모집하는 대학이 늘면서 ‘무늬만 유학생’을 위한 ‘비자 공장’이란 비판까지 나올 지경이다.

유학생 장사는 졸속 추진된 반값 등록금이 초래한 다양한 부작용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가에선 “20년 넘은 구닥다리 장비로 교육 받고 졸업하는 학생이 대다수”(B대 총장) “신규 교수 채용에 쓸 돈이 없어 인공지능 같은 분야는 포기했다”(C대 부총장)는 하소연이 나온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한국의 대학경쟁력(사회수요 적합성)은 2011년엔 59개국 중 39위, 2019년엔 63개국 중 55위다. 교육 질, 연구 경쟁력의 추락이 계속되면 한국 학생이 대거 중국 대학에 유학갈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