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양승태, 후배 판사들 무죄에 "다행"…특히 성창호에 안도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 안타까웠는데 무죄가 나와 다행이네요"

자신의 비서였던 성창호 판사엔 "참 훌륭한 친구"

양승태(72) 전 대법원장이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잇달아 무죄 선고를 받은 후배 판사들을 보며 밝힌 소회다. 지난주 양 전 대법원장과 만난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양 전 원장이 이번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배 판사들에게 미안해했다"며 "최근 판결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폐암 수술을 받은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이 중단된 지 2개월만인 21일 법정에 마스크를 쓰고 출석해 54번째 공판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재판 출석은 가능하지만, 아직 추적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라 피고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창호에 마음 쓴 양승태 

양 전 대법원장은 최근 무죄를 받은 판사 중 자신이 대법원장 시절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성창호(48) 부장판사의 무죄 선고에 특히 안도했다고 한다. 지난해 1월 김경수(53) 경남지사에게 댓글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던 성 부장판사는 두 달 뒤 영장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신광렬(55)·조의연(54) 판사와 함께 검찰에 기소됐다. 보복 기소 논란이 있었던 재판은 지난해 5월부터 7개월 가까이 이어졌고 지난 13일 세 판사는 모두 무죄를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성 부장판사에 대해 "훌륭한 친구인데, 이번 수사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성창호 부장판사가 13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뉴스1]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성창호 부장판사가 13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뉴스1]

법원은 지난 1~2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던 유해용·신광렬·조의연·임성근 등 전·현직 판사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의 혐의가 "오랜 관행이거나, 법리적으로 직권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방법원의 한 현직 판사는 "앞선 후배 판사들의 무죄 선고는 양 전 대법원장에겐 상당한 희소식"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에선 '사법농단'이라 부르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범죄 구성을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을 수사했던 검찰 관계자는 "아직 다른 1심과 항소심이 남았고, 이미 구속까지 됐던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결과는 다를 것"이라 반박했다. 지난해 1월 구속됐던 양 전 대법원장은 현재 보석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닌달 30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7명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닌달 30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7명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혐의 상고심 판결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권남용 판결 주목했던 양승태 측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단은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로 재판이 중단된 지난 두 달 사이 대법원에서 선고된 안태근(55) 전 법무부 검찰국장과 김기춘(81)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판결에 주목했었다고 한다. 대법원이 직권남용 법리에 어떤 판단을 하는지에 따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의 운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인사 보복 혐의로 기소된 안 전 국장의 사건은 모두 무죄 취지로, 김 전 비서실장 등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일부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 성립의 문턱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 측에선 "이보다 더 직권남용을 엄격히 봤어야 한다"는 아쉬운 목소리가 제기됐다고 한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선 대법원이 직권남용의 요건을 더 좁게, 검찰 입장에선 조금 더 넓게 해석하길 바랄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