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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에 만신창이된 日 "英국적인데 억울···관할권 정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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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크루즈선 한 척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일본 정부가 조만간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크루즈선의 관할권에 대한 논의를 제안할 방침이다.

신종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지난 11일 요코하마항에 정박해있는 모습. 다이코쿠 부두에 일본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지난 11일 요코하마항에 정박해있는 모습. 다이코쿠 부두에 일본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있다. [연합뉴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21일 "크루즈선내에서의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확대에 따라 일본 정부는 선박의 관할권에 대한 국제적인 룰을 만들자고 국제사회에 요청해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국적은 영국인데 #"일본만 당하는 건 억울하다" 기류 확산 #닛케이 "국제회의서 관할권 논의 방침" #모테기 외상 "지금같은 책임전가 안돼" #논의 자체에 일본 정부의 면피성 의도

20일 일본 정치권에서 이런 주장들이 일제히 터져나왔다.

닛케이에 따르면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후생노동상은 전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누가 어떤 관할권을 갖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지금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같은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도 관할권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협력체제의 구축을 포함해 어떤 대응이 바람직할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AP=연합뉴스]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AP=연합뉴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외상은 기자회견에서 "기국(旗國·선박이 등록돼 있는 국가), 선박을 운항하고 있는 나라, 영해국이 어떻게 연계해 역할분담을 할지 논의해야 한다"며 "지금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19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내린 승객들을 태운 버스가 요코하마역에 도착했다. [윤설영 특파원]

19일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내린 승객들을 태운 버스가 요코하마역에 도착했다. [윤설영 특파원]

그래서 6월 G7(주요 7개국)정상회의,11월의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 등에서 "항행하는 선박의 관할권을 정리하자"고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공포의 크루즈’로 불리는 배 한척 때문에 일본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10시 현재 일본에서 확인된 감염자는 728명, 그중 크루즈선내 감염자가 무려 634명이다.

현재 공해상에서 통용되는 국제법상의 원칙은 기국주의다. 공해상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한 '배타적 관할권'은 배가 등록돼 있는 국가에 있다.

문제가 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운항회사는 미국 기업의 일본 법인인 ‘카니발 재팬’이지만 선적(배의 국적)은 영국이다.

하지만 기국인 영국은 사실상 계속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배가 영해에 들어오기 까지 일본은 손을 쓸 수도 없었는데, 지금처럼 일본만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일본 국내엔 분명히 존재한다.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하선한 한국인 6명과 일본인 배우자 1명을 태운 공군 3호기가 19일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중앙포토]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하선한 한국인 6명과 일본인 배우자 1명을 태운 공군 3호기가 19일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중앙포토]

크루즈내에 1300여명의 일본인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크루즈의 기항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항을 받아들인 결과 크루즈선내 감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국제사회에선 “일본의 격리 방침이 화를 키웠다”는 비판이 폭발하고 있다.

그래서 국제회의에서라도 이 문제를 한 번 따져보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의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 닛케이는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는 선적국보다 기항국·연안국의 관할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만약 기항국이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면 크루즈선 입항을 거부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관할권과 관련된 논의 자체가 일본 정부의 면피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경우 배가 일본 영해에 진입해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건 지난 3일 밤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승객들에게 객실 대기 조치를 실시한 것은 10명의 감염자가 확인된 5일이후였다.

일본 정부가 3일부터 당장 객실 격리 조치를 단행 했다면 감염 확대를 더 줄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가토 후생노동상 등 일본 정부는 "그 단계에서는 운항회사가 대응을 했어야 했다","선장이 모든 걸 컨트롤하고 있었고, 우리는 조언만 했다"며 운항회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아사히 신문 등에 따르면 크루즈선내 감염자 중 2명의 사망이 20일 확인되면서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예외적인 상황에선 예외적인 대응이 필요한데,일본은 상황이 평상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통상적인 대응만 한다"는 전문가의 분석을 실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일본이 신종 코로나의 가장 위험한 장소로 떠오르면서 아베 정권이 비판을 받고 있다"고, 홍콩의 명보(明報)는 "일본의 방역대책은 의심할 것도 없이 실패했다"고 했다.

한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승객들의 하선은 계속 이어져 21일에도 바이러스 음성 판정을 받은 약 450명이 배에서 내릴 예정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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