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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아시아의 병자"에 中이 발끈, 영화 '정무문' 보면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비판적인 제목을 단 칼럼을 내보낸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 베이징 주재 기자 3명의 외신기자증이 취소됐다. 지난 19일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취소 이유를 밝히면서 해당 칼럼이 "인종차별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 특파원 3명 외신기자증 취소 #청나라 때 서구에게 조롱당한 '동아병부'의 기억 영향 #영화 정무문, 무인 곽원갑 등이 당시 배경 #폼페이오 비판에 中외교부 대변인 '재응수'

이 칼럼은 외부 학자의 기고문을 실은 것으로, 신종 코로나로 인해 중국 경제와 정치가 모두 타격받아 회복이 더딜 것이라고 전망하는 내용이다.

매일 외신에는 중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관한 다양한 기사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그런데 중국은 유독 WSJ이 단 '중국은 진정한 아시아의 병자(China is the real sick man of Asia)'라는 타이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영화 '정무문'에서 배우 브루스 리가 '아시아의 병자'라고 쓰여진 현판을 들고 있다. 그는 이 현판을 부순다. [inmediahk.net]

영화 '정무문'에서 배우 브루스 리가 '아시아의 병자'라고 쓰여진 현판을 들고 있다. 그는 이 현판을 부순다. [inmediahk.net]

20일 중국 현지 언론들은 월스트리트저널을 비판하는 글을 내보내며 브루스 리가 주연했던 영화 '정무문'의 한 장면을 참조 사진으로 내걸었다.

영화 '정무문'의 배경은 미국·영국 등 서양 열강의 조계지가 설치돼 있던 때의 상하이다. 청나라 말기 중국은 경제적으로 침체해 있었고 부패가 만연했다. 이것을 '병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들도 조롱의 대상이 됐다. 1896년 영국인이 펴낸 영문잡지에서도 중국인을 ‘Sick man of East Asia’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청말 사상가 양계초(梁啓超)에 의해 ‘동아병부(東亞病夫, 아시아의 병자)’로 번역돼 중국에 다시 소개됐다.

영화 정무문에서 브루스 리가 열연한 주인공 진진은 정무문의 창시자 곽원갑의 제자로 설정된 가공인물이다. 진진은 일본인들이 정무문 도장에 던져놓고 간 액자 속의 '동아병부'라는 글귀를 가격한다. 중국인들은 이 장면을 통쾌하다고 여긴다. 영화 '무인 곽원갑'에도 서구가 중국을 ‘아시아의 병자’로 부르며 조롱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영화 정무문의 한 장면. 주인공 진진(브루스 리 주연)이 아시아의 병자라고 쓰여진 액자를 기둥에 내려 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영화 정무문의 한 장면. 주인공 진진(브루스 리 주연)이 아시아의 병자라고 쓰여진 액자를 기둥에 내려 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중국 입장에서는 100여 년 전 서구에 의해 '병자'로 불렸던 역사가 다시 반복된 느낌이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중국만이 '병자'라고 표현되어 온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독일·프랑스도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의 조치에 대해 "올바른 대응은 반대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지, 발언을 억제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정확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중국인들도 누리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런 비판에 중국 외교부가 또다시 반격에 나섰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온라인 정례 브리핑에서 "(WSJ의) 보도는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언론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며 "이는 객관적인 사실과 직업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로 중국 인민의 극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광범위한 비난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폼페이오 장관은 걸핏하면 언론의 자유를 입에 올린다"며 "한 국가와 민족을 모욕하는 글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행위가 미국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그는 "WSJ가 다른 사람을 모욕할 자유가 있다면, 모욕을 받은 사람도 반격할 권리가 있다"고 되받았다.

WSJ의 윌리엄 루이스 발행인 역시 중국 외교부의 결정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중국 관련 기사를 계속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외신 기자증을 취소하게 된 계기가 된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 중국은 진정한 아시아의 병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월스트리트 저널 캡처]

중국 정부가 외신 기자증을 취소하게 된 계기가 된 월스트리트 저널의 칼럼. 중국은 진정한 아시아의 병자라는 제목을 달았다. [월스트리트 저널 캡처]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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