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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집세 잡아야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만약 모든 국회의원과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면 다락같이 오르는 전세와 사글세를 요즘처럼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을까. 집세가 들먹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지난 8월 하순부터였고 이사철과 결혼시즌이 겹친 9월과 10월에는 집세 등귀 폭이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울의 강남·강동·서초·양천구에는 20∼30평의 아파트 전세가 1천만원내외의 폭으로 뛰었고 목동 2O평 아파트의 경우 작년 2천만원 전세가 무려 3천5백만원으로 폭등했다.
민생문제를 중시하는 국회라면 유명무실한 현행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고, 아파트 분양가 현실화를 전격 발표할 정도로 주택가격 문제에 신경을 써온 정부라면 당연히 집세의 안정대책도 늦기 전에 내놓았어야 했다.
집세 오름세가 현재의 추세대로 확산될 경우 그것이 몰고 올 경제적·사회적 폐해는 자명하다. 서울의 경우 주택보급률이 59%라고 하나 1가구 2주택 부분을 감안하면 무주택가구는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추산이 나온다. 집세 상승은 무엇보다 무주택 서민계층으로부터 주택보유자로의 직접적인 소득 이전을 초래하여 정부가 누차 강조해온 분배의 형평을 크게 훼손한다.
갑자기 5백만원 또는 1천만원의 전세 추가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지하실, 달동네 또는 도시외곽으로 밀려나고 근로자 가족들에게 정부가 그동안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는 주택가격 안정대책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겨울을 앞둔 지금의 집세 인상은 내년 봄 근로자들이 요구할 임금인상 폭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조순 부총리가 거듭 천명한 고임금-고물가의 악순환 단절도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근로자들의 수입에 해당하는 임금인상에 한자리 수 원칙을 호소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출항목 중 주요부분인 집세 상승에도 한자리 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성과는 여하간에 이를 위한 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
정부는 92년까지의 2백만 가구 주택건설 계획이라든가 일산·분당 신도시 건설과 같이 주택의 안정공급을 위한 중장기 대책들을 그럴싸하게 제시했지만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단기대책에는 전혀 손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내년도의 예산팽창에다 심지어 「큰 정부」론까지를 앞세우며 국민복지증진의 의욕을 과시해 온 정부가 아니였던가.
오른 사글세를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는 서민들의 망연한 심정에 잠시 동참한다면 방법 찾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도 그 방법중의 하나다. 법 개정에서는 예컨대 6개월 또는 1년 등 임대차계약기간에 관계없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상의 집세 인상을 금지하는 내용이 검토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번지고 있는 집세 앙등의 추세를 보면 대책강구는 더 이상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절실감이 느껴진다. 지난 13일의 아파트 분양가 현실화 발표가 과거에 있었던 지가상승의 추인을 의미했듯이 실기한 집세 안정대책 역시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집세를 뒤늦게 공인하는 결과로 낙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주택 당국자는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나 친척을 만나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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