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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좀 해본 아이돌 “슬픈 내용이라도 웃길 땐 웃길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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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호 19면

[셀럽 라운지] 뮤지컬 ‘웃는 남자’로 돌아온 규현

슈퍼주니어의 규현은 2016년 뮤지컬 ‘모차르트!’ 이후 4년만의 뮤지컬 복귀작 ‘웃는 남자’(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인생작을 만났다“는 팬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슈퍼주니어의 규현은 2016년 뮤지컬 ‘모차르트!’ 이후 4년만의 뮤지컬 복귀작 ‘웃는 남자’(3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인생작을 만났다“는 팬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웃는 얼굴로 우는 남자-.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위대하다고 꼽은 소설 『웃는 남자』에서 창조한 캐릭터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 귀족의 잔인한 구경거리를 위해 입이 찢겨진 남자 ‘그윈플렌’이 한국 무대에서 다시 태어났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섬세하게 빚어낸 뮤지컬 ‘웃는 남자’는 2018년 초연 당시 관객 20만명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웃는 얼굴로 우는 남자 캐릭터 창조 #빅토르 위고 스스로 꼽은 최애 작품 #‘베르테르’‘모차르트!’서 비극 경험 #“그윈플렌 절망, 천진난만하게 표현할 것”

14개월 만에 돌아온 그윈플렌은 슈퍼주니어 규현(31)의 변신으로 눈길을 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밝고 쾌활한 이미지로 활약 중인 그가 무대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선 것이다. 사회복무요원 소집해제 8개월 만에 첫 무대를 밟은 ‘천상 아이돌’ 규현은 ‘웃는 얼굴로 우는 남자’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초연을 두 번이나 재밌게 봤거든요. 작품 관계자분들이 ‘다음에 같이 하자’고 했을 때는 하하 웃어넘겼죠. 그런데 뮤지컬 복귀작으로 여러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 작품이 계속 생각나고, 꼭 해보고 싶었어요. 4년 만의 뮤지컬이라 걱정도 있었지만, 연습으로 극복했습니다.”

마냥 유쾌한 이미지와 달리 다소 긴장된 표정이 뜻밖이었다. 실제로는 ‘샤이한’ 성격인 걸까. “밝은 성격 맞는데 오늘 컨디션이 별로”란다. 그러면서도 “나대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카메라가 들어오면 이상해진다”는 그는 가식없고 진솔했다. 긴장이 좀 풀리자 금세 막내동생 같은 ‘엄마미소 유발자’로 돌아왔다.

사실 무대 위의 규현에게는 비극이 낯설지 않다. 전작인 ‘베르테르’ ‘모차르트!’에서 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예능을 할 땐 대중을 재밌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뮤지컬에서는 제가 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해요. 베테랑 배우들처럼 순간 몰입은 안되지만 진심을 다해 하려고 하죠. 비극이라도 가능한 선에서는 즐거운 장면을 많이 만들려고 하구요. 우울하게만 가면 저나 관객이나 힘들 수 있잖아요. 웃길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우습게 표현하려고 해요.”

소속사 후배 EXO 수호를 비롯해 이석훈, 박강현 등 쟁쟁한 배우들과 쿼드러플 캐스팅인 만큼 ‘나만의 그윈플렌’을 위한 숨은 노력도 있었을 터. “연출진과 많이 얘기하면서 캐릭터를 만드는데, 제 경우 해맑은 그윈플렌이 급전직하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와닿는다고 하세요. 그걸 더 잘 살리려고 천진난만한 면모를 많이 보여주려고 하죠. 사실 모든 작품에 연출의 숨은 의도가 많은데 객석까지 안 와닿는 경우가 있어요. ‘웃는 남자’도 처음 보는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더니 왜 바로 끝나냐’고 묻기도 하죠. 저도 두 번 보고 그윈플렌을 이해했거든요. 귀족으로서 특권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잖아요. 그걸 처음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연기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옥주현의 4시간 꼼꼼한 가르침 큰 도움

2006년 데뷔한 규현은 15년째 장수 아이돌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06년 데뷔한 규현은 15년째 장수 아이돌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10년 ‘삼총사’로 데뷔할 때 만 해도 뮤지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규현은 늘 다른 배우들의 에너지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고 털어놓았다. 여러 멤버 사이에서 적당히 힘을 뺄 수도 있는 아이돌 그룹 활동과 달리 텅 빈 무대를 혼자 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100%의 에너지를 동료들로부터 얻는다는 것이다.

“‘삼총사’ 때는 발성법, 대사톤이 뭔지도 몰랐어요. 왕용범 연출님이 앙상블 배우들에게 규현이를 욕해달라고 부탁해서 한 20분 동안 욕을 먹었는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서 한꺼풀 벗어냈달까요. 처음엔 저를 신경도 안쓰시던 엄기준 선배도 어느날 ‘뮤지컬 계속 할꺼니?’ 묻더니 정말 많이 조언해 주셨어요. ‘베르테르’ 때는 조승우 선배 도움도 많이 받았죠.”

‘웃는 남자’를 준비할 때는 같은 제작사의 뮤지컬 ‘레베카’에 출연하고 있는 옥주현의 도움이 컸다. 연습실 영상을 본 옥주현이 “괜찮은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연락을 해 온 것이다. “4시간 동안 저를 붙들고 가르쳐 주셨어요.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는데, 디테일한 표현법부터 목관리까지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수호요? 다른 그윈플렌들은 많이 도와주는데 수호는 별로 도움이 안 됐어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워낙 친한 동생이라, 다른데선 리더로서 멋지게 행동하다가도 저한테만 오면 애기가 되거든요. 그동안 자주 못보다가 작품 때문에 자주 보게 된 것 만으로도 좋았죠.”

통상 전성기를 지난 아이돌이 뮤지컬로 활동 무대를 옮기곤 하지만, 규현은 벌써 뮤지컬 데뷔 11년차다. 어려서부터 뮤지컬에 특별한 로망이 있었던 걸까. “그 당시 저는 슈주 멤버인데도 팬들 말곤 아무도 알아봐주는 사람이 없는 허접한 사람이었거든요. 다른 멤버들은 다 개인 활동을 하는데 저만 스케줄이 없어서 지하철 타고 다니고 그랬어요. ‘연예인이 왜 스케줄이 없냐’는 소리도 들었죠. 뭔가 하고 싶던 와중에 처음으로 뮤지컬에서 저를 찾아주신 거예요. 한 번 제대로 파봐야겠다는 생각에 애정을 갖고 열심히 했어요. 해보니 즐겁더라고요. 저도 즐겁고 팬들도 즐거워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네요.”

‘웃는 얼굴로 울어야 하는’ 그윈플렌과 달리 규현은 DNA부터 낙천적으로 보였다. 2007년 “죽다 살아날 만큼” 큰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딱히 트라우마도 없고, 오히려 사고 이후 더 밝아졌다. 가수와 방송인, 뮤지컬 배우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바쁜 스케줄에 오히려 팬들이 건강을 염려하지만, “힘들어할 이유가 없다”는 그다. “글쎄요, 바쁘게 살기로 제가 선택했으니 투정하면 안 되죠. 일을 미친 듯이 하는 게 익숙하고, 별로 쉬고 싶지도 않아요. ‘다음 주에는 노래 안 부르는 날이 이틀 있으니 그때 편한 친구들과 한 잔 하면 되겠다’는 정도의 희망이면 충분히 충전이 됩니다.”

“무대 없는 날 친구들과 술 한 잔이면 충분”

2006년 데뷔한 슈퍼주니어가 15주년을 맞았으니, 인생의 절반을 아이돌로 살면서 느끼는 고충도 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을 하겠다”는 그다. “길에서 고개를 못 들고 다녀요. 15년 동안 배인 습관인데, 눈을 마주치면 알아볼 것 같아서요. 여름에 바다에 놀러 가지도 않죠. 오픈된 장소에 못가는 아쉬움 말고는 금전적 여유를 비롯해 얻는 게 너무 많아요. 공연 다니면서 팬들을 만나면, 어쩌면 저렇게 사랑스럽게 저를 바라봐주실까 싶거든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직업이 또 있을까요.”

오랜 팬덤은 그가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요즘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결론은 못 내렸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박수와 함성을 받는다는 건 소름돋을 만큼 감동적인 일인 것 같아요. 팬들이 사는 이유가 저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됐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퇴근길 팬들이 건네주는 편지를 일일이 읽어본다는 그는 뮤지컬 배우로서 어디까지 가고 싶냐는 물음에도 “팬들 통장이 괜찮을 때까지”란다. “편지를 보니 팬들 통장이 텅 비었다네요. 티켓이 워낙 비싸서 사실 저도 지인 초대할 때 벌벌 떨거든요.(웃음) 제 공연은 티켓이 없어서 못 구할 정도는 아니라 회전문을 돌며 자꾸 돈을 쓰게 되는 게 죄송하네요. 제 인기가 더 많아져야 팬들이 돈을 아낄 수 있겠죠?(웃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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