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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우리가 중국을 혐오하면 서양은 동양을 혐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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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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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중식당 입구에 붙은 안내문.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인 혐오의 사례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중식당 입구에 붙은 안내문.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인 혐오의 사례다. [중앙포토]

여행기자로 십수 년을 살다 보니 다른 문화와 섞이는 일이 잦다. 하여 낯선 것에 대하여 무던한 편이다(무던하다고 믿는 편이다). 이를테면 나는 일본 신사에 입장하기 전에 왼손과 오른손을 차례로 씻으며, 키나발루 고산족 앞에선 꿈틀대는 애벌레를 씹어 삼킨 뒤 웃어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성경을 찾아 읽고, 이슬람 국가에선 딱 한 잔의 간절함을 기꺼이 견딘다.

나는 내가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 일말의 편견도 없는 글로벌 인류이자 ‘다름’과 ‘틀림’을 분간할 줄 아는 지성인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는 괴이쩍은 전염병을 알기 전까진.

고백하는데, 나도 중국인이 박쥐를 뜯어 먹는 영상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지. 오죽하면 괴질이 생기겠어.’ 치료법은커녕 병인(病因)도 모르니 의심이 도진 것이었고, 수상한 소문에 불안을 위탁한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핑곗거리를 주입해야, 눈 뜨면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 공포의 시절을 수긍할 수 있었다.

한 달 전을 돌아본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중국인을 애타게 기다렸다. 중국인 관광객, 즉 유커(游客)는 한국 관광산업의 큰손이자, 침체한 관광시장의 유일한 활로였다. 지금 중국인은? 보살핌이 필요한 병자도 못 된다. 전염병이나 퍼뜨리는 미개인이라는 인식은 그나마 중국인을 사람으로 볼 때다. 배척해야 할 병균으로 보는 시선이 되레 파다하다.

며칠 전 어느 해외 교민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읽고서 깜빡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포는 자녀가 현지 학교에서 차별당했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하나. 동양인이어서였다. 그래, 맞다. 서양에서 한국인은 중국인과 구별되지 않는다. 굳이 구별하지도 않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눈 찢어지고 코 낮은 옐로일 뿐이다. 이 시선을 잘 안다. 지구촌 곳곳에서 그 기분 더러웠던 시선을 무수히 받았다. 내가 다른 문화를 차별하지 않은 건(않았다고 믿은 건), 내가 다른 문화로부터 차별 받았기 때문이다.

손흥민도 영국에서 차별을 당했다. 인터뷰 도중 기침을 했더니 조롱의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이탈리아의 한 음악학교가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의 수업 참석을 금지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가 중국인을 혐오하듯이 서양은 우리 동양을 혐오한다. 억울하신가? 가장 억울한 건, 우리처럼 공포에 떠는 십수 억 명의 건강한 중국인이다.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어쩌면 병균이 아니다. 차별이고 혐오다.

사족. 방역을 위한 차단과 불안이 야기한 혐오는 별개 문제다. 이 또한 헷갈리는(또는 헷갈리는 척하는) 사람이 있는 듯해 분명히 밝힌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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