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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국을 혐오하듯이 서양은 동양을 혐오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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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아주 오래전. 호주 퍼스에서 중부 아프리카의 섬나라 모리셔스 출신의 흑인 친구와 지하철을 탔을 때 일화다. 마침 앞자리에 또래로 뵈는 흑인 셋이 앉았다. 옆자리 흑인 친구에게 슬쩍 물었다.  
 “앞자리 애들 어디 출신인지 알아맞힐 수 있어?”
 “물론이지. 맨 왼쪽은 내 고향 근처에서 왔고, 가운데는 남아프리카 쪽이고, 오른쪽은 북아프리카.”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눈엔 다 블랙인데.”
 “아니, 그걸 어떻게 몰라? 척 보면 다 아는데. 너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다며?”
 “당연하지.”
 “어떻게 다른데?”
 “그러니까…, 음…. 중국인은 중국인처럼 생겼고, 한국인은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음….”
 “내 눈엔 다 똑같거든. 눈 찢어지고 코 낮은 옐로.”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중식당 입구에 붙은 안내문.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인 혐오의 사례다. [중앙포토]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중식당 입구에 붙은 안내문.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중국인 혐오의 사례다. [중앙포토]

여행기자로 십수 년을 살다 보니 다른 문화와 섞이는 일이 잦다. 하여 낯선 것에 대하여 무던한 편이다(무던하다고 믿는 편이다). 이를테면 나는 일본 신사에 입장하기 전에 왼손과 오른손을 차례로 씻으며, 키나발루 고산족 앞에선 꿈틀대는 애벌레를 씹어 삼킨 뒤 웃어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성경을 찾아 읽고, 이슬람 국가에선 딱 한 잔의 간절함을 기꺼이 견딘다.

나는 내가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 일말의 편견도 없는 글로벌 인류이자 ‘다름’과 ‘틀림’을 분간할 줄 아는 지성인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는 괴이쩍은 전염병을 알기 전까진.

고백하는데, 나도 중국인이 박쥐를 뜯어 먹는 영상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지. 오죽하면 괴질이 생기겠어.’ 치료법은커녕 병인(病因)도 모르니 의심이 도진 것이었고, 수상한 소문에 불안을 위탁한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핑곗거리를 주입해야, 눈 뜨면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 공포의 시절을 수긍할 수 있었다.

2월 5일 오전 10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화면. 68만 명 가까운 국민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2월 5일 오전 10시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화면. 68만 명 가까운 국민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한 달 전을 돌아본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중국인을 애타게 기다렸다. 중국인 관광객, 즉 유커(游客)는 한국 관광산업의 큰손이자, 침체한 관광시장의 유일한 활로였다. 지금 중국인은? 보살핌이 필요한 병자도 못 된다. 전염병이나 퍼뜨리는 미개인이라는 인식은 그나마 중국인을 사람으로 볼 때다. 배척해야 할 병균으로 보는 시선이 되레 파다하다.

며칠 전 어느 해외 교민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읽고서 깜빡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동포는 자녀가 현지 학교에서 차별당했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하나. 동양인이어서였다. 그래, 맞다. 서양에서 한국인은 중국인과 구별되지 않는다. 굳이 구별하지도 않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눈 찢어지고 코 낮은 옐로일 뿐이다. 이 시선을 잘 안다. 지구촌 곳곳에서 그 기분 더러웠던 시선을 무수히 받았다. 내가 다른 문화를 차별하지 않은 건(않았다고 믿은 건), 내가 다른 문화로부터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인을 혐오하듯이 서양은 우리 동양을 혐오한다. 천하의 손흥민도 영국에서 차별을 당했다. 인터뷰 중간에 기침 한 번 했다고 조롱의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억울하신가? 가장 억울한 건, 우리처럼 공포에 떠는 십수 억 명의 건강한 중국인이다.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어쩌면 병균이 아니다. 차별이고 혐오다.

사족. 방역을 위한 차단과 불안이 야기한 혐오는 별개 문제다. 이 또한 헷갈리는(또는 헷갈리는 척하는) 사람이 있는 듯해 분명히 밝힌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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