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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원 새벽근무 폐지에…“출근길에 쓰레기 쌓여 불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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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훤히 밝을 때 작업해서 편합니다."

지난달 22일 오전 6시30분 서울지하철 4호선 창동역 인근 도로 주변. 동이 트기 전, 형광색 근무복을 입은 14년차 환경미화원 박모(51)씨가 길거리에 떨어진 전단지를 쓰레받이에 쓸어담고 있었다. 원래 새벽 4시에 청소를 시작했던 박씨는 도봉구의 '환경미화원 주간근무 지침'에 따라 오전 6시에 출근하고 있다.

환경부, 작년 작업안전 지침 통보 #일부 구청들 “현실성 없다” 반대 #미화원 “월급 100만원 손해 걱정”도 #도봉구는 작년부터 전원 주간근무

해가 뜨는 오전 7시 반이 되자 출근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많아졌다. 박씨는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피해다니며 비질을 했지만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은 없었다. 역 인근 청소를 마무리한 박씨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동해 오전 9시까지 청소를 이어갔다.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도봉구 환경미화원과 쓰레기수거차량. 함민정 기자

오전 6시에 출근하는 도봉구 환경미화원과 쓰레기수거차량. 함민정 기자

도봉구에서는 지난해 1월부터 환경미화원의 새벽 근무를 없앴다. 야간에 근무하는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서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시민들이 활동하기 전 청소할 시간이 줄긴 했지만 창동역 인근에 포장마차가 없어지면서 쓰레기 양도 함께 줄어 무리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아직 큰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새벽 근무 때는 어두워서인지 음주운전을 하는 것 같은 차량이 내 쓰레받이를 치고 간 적도 있었다”며 “훤히 밝은 곳에서 작업하게 돼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주간근무하라' 법 개정했지만

지난해 3월6일 환경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전국 지자체에 통보했다. 도봉구는 환경부에서 이 지침에 대한 논의 단계때 심야 근무를 없앤 곳이다.
환경부 지침에는 ▶미화원들의 야간·새벽 작업을 주간 작업으로 전환하고 ▶청소차량에 안전장치를 부착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그해 12월 31일에는 "환경미화 업무는 주간작업을 원칙으로 한다"는 항목이 담긴 폐기물관리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환경부의 지침도 사고 예방이 목적이다. 지난해 3월 관악구에선 50대 환경미화원이 야간 작업 중 음주 차량에 치여 사망했고, 2018년 2월 용산구에서는 환경미화원이 야간에 청소차량 유압장치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2017년 야간 안전사고를 당한 환경미화원은 1822명이다. 이 가운데 18명이 숨졌다.

야간 근무 중인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함민정 기자

야간 근무 중인 환경미화원이 쓰레기를 옮기고 있다. 함민정 기자

하지만 서울시 일부 구청들은 환경미화원들의 새벽 근무 폐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 사정상 낮에 작업을 하면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길 위에 많이 보일 것”이라며 “도봉구가 한다고 모든 구에 다 적용 가능한 게 아니어서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간근무 작업환경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주간에는 차가 많아 오히려 사고 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동대문구에서 쓰레기차를 운전하는 김모(51)씨 역시 “낮에는 차가 많아 작업이 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주간 근무 원치 않는 미화원도 있어"

서울시의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미화원들 역시 주간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새벽 근무는 대부분 임금이 낮은 용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하는데 심야 근무 수당이 사라지면 월 100만원 가까이 급여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환경부가 주간 작업 전환 지침을 내릴 때 예시로 든 사례. [사진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환경부가 주간 작업 전환 지침을 내릴 때 예시로 든 사례. [사진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도봉구 미화원 박씨도 급여가 줄었는지 확인했다. 이에 대해 도봉구청 관계자는 "심야 수당 자체는 줄었지만 임금 체계 개편에 따라 급여 자체가 올라서 실제로 박씨가 받아가는 돈은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미화원들의 근로 형태나 임금 계약 등은 구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부 "주간 업무 정착 위해 노력" 

환경부는 주간근무 지침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폐기물관리과 관계자는 “각 지자체마다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지만 미화원의 안전도 중요하다”며 “환경미화원의 주간 업무 문화를 정착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오는 3월까지 각 지자체에 환경미화원 주간근무 시행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합리적 필요에 따라 조례를 설치해 주간근무 예외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편광현·함민정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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