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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밤이 조용해졌다…"中원단 공급도 막혀 생산 스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평소와 다르게 한산한 동대문 의류상가 거리. 추인영 기자

평소와 다르게 한산한 동대문 의류상가 거리. 추인영 기자

신음하는 자영업자…동대문·인사동·가로수길 3각 르포

“여기 안 보이세요? 보이는 대로에요.”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디오트’ 1층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여성 상인은 3일 “요즘 분위기가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터뷰는 안 한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는 패션의 메카 동대문까지 강타했다.

이날 오전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비좁은 매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 내부는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영업하는 디오트는 평소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관광객이나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지만 이날 상가 건물을 다니는 이들은 주로 옷가지가 가득 담긴 대형봉지를 양손에 잔뜩 쥔 소매상들과 원단 판매상들뿐이었다. 이들마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산한 동대문 의류상가 거리. 추인영 기자

한산한 동대문 의류상가 거리. 추인영 기자

동대문 밤거리엔 보통 낮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몰리지만 3일 오전0시30분쯤의 밤거리 모습은 더 을씨년스러웠다. 평소 물량을 실어나르는 차량이 빼곡히 주차돼 지나가기조차 힘든 거리와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다니는 보행자들로 꽉 찼던 횡단보도는 휑했다. 디오트에서 자정부터 12시간 근무하는 주영조(28) 씨는 “지난 연휴부터 거리나 매장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며 “손님과 매출이 30~40% 감소했다”고 말했다. 동대문관광특구협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설 연휴 이후 현재 동대문 상가 방문객 수는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매출액도 30~40% 감소했다.

중국 원단 공급도 막혔다   

중국 절강중국칭팡청그룹이 원단 시장 개장 일자를 2월 1일에서 2월 8일 이후(구체적 시간은 별도 공지)로 연기했다고 밝힌 공지문. [독자 제공]

중국 절강중국칭팡청그룹이 원단 시장 개장 일자를 2월 1일에서 2월 8일 이후(구체적 시간은 별도 공지)로 연기했다고 밝힌 공지문. [독자 제공]

도매 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원단 수입이 끊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원단 시장은 지난달 27일 개장 일자를 2월 8일 이후로 연기했다. 사실상 무기한 연장된 셈이어서 중국에서 원단을 공급받는 업체들은 새로운 공급처를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원단보다 저렴한 중국 원단을 쓰지 못하면 그만큼 마진이 줄어든다. 동대문의 한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추진우(31) 씨는 “이 바닥은 원가 1000원만 틀어져도 경쟁력이 없어진다”며 “무조건 싸게 만드는 게 일을 잘하는 건데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도매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유모(31) 씨는 “국내 원단과 중국 원단 단가가 최대 2배까지 차이가 나는데 중국 원단 수급이 안 되니까 주문이 들어와도 생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내부 모습. 추인영 기자

고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내부 모습. 추인영 기자

국산 원단을 쓰는 업체들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동대문에서 10년 넘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정우(44) 씨는 “우리는 중국 거래처가 많지 않아 매출 감소량이 10~20% 수준”이라면서도 “분위기 자체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이런 상태가 장기화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매장 주인 A 씨(40)는 “중국 원단 비율이 평균 20~30% 되는데 (물량이 적게 들어오면) 영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타격이 있다”며 “보통 춘제가 끝나고 2월이 되면 사람이 확 늘어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 더 걱정”이라고 했다.

동대문 시장이 관할구역인 서울 중구청은 주요 장소를 방역하고 동대문 야간 방문객들을 위한 상담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긴급특별융자자금 40억원을 편성해 연 1.2% 이율로 소상공인 긴급 지원에도 나선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 숙박업과 의류상가 내 영세사업자들이 그 대상이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자체 방역으로 대응하고 있고, 확진자가 발생한 곳도 아닌데 영세업자들이 과도하게 피해를 보는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가로수길 맛집 점심 2시간에 손님 4팀   

한산한 신사동 가로수길. 추인영 기자

한산한 신사동 가로수길. 추인영 기자

같은 날 오전 11시반쯤 가로수길. 가로수길 대로변의 한 브랜드 매장이 통유리 전체에 빨갛게 ‘최대 80% 할인’ 문구를 내걸었지만, 마스크를 쓴 손님 2명만이 매대의 옷가지들을 들춰보고 있었다. 텅 빈 가게를 지키던 주인들은 발길을 들인 기자를 보고 환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신원을 밝히면 반색하고 “할 말 없다”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맛집으로 알려진 신사동의 한 식당에선 점심시간 2시간에 손님이 4테이블에 그쳤다. 이 식당은 2개 층에 테이블 30여개를 놓고 운영 중이다. 송파구에서 택시를 타고 신사동에 왔다는 B 씨(40)는 “차가 전혀 안 막혀서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했다”며 “강남대로가 안 막힌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경복궁 앞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는 관광객 뒤로 '중국인 입국금지'를 내건 시위 차량이 보인다. 이소아 기자

경복궁 앞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는 관광객 뒤로 '중국인 입국금지'를 내건 시위 차량이 보인다. 이소아 기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한복을 입고 경복궁 인근을 지나고 있다. 이소아 기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한복을 입고 경복궁 인근을 지나고 있다. 이소아 기자

하루 200만원 매출→20만원으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역시 한낮에도 썰렁했다. 인사동에서 전통공예점을 운영하는 변홍섭 씨는 “지난주부터 코로나 사태 여파로 손님이 확 줄어 하루 200만원 하던 매출이 20만원으로 줄었다”며 “이렇게 해선 집세 내기도 버겁다”고 토로했다. 매출액으로는 인사동에서 ‘톱5’ 안에 든다는 이 가게는 이 날 기자가 찾은 시간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변 씨는 “보통 오후 10시에 가게 문을 닫지만, 요즘엔 (손님도 없어) 오후 7시만 되면 닫는다”고 했다.

텅 빈 인사동 가게. 이소아 기자

텅 빈 인사동 가게. 이소아 기자

한국 전통 기념품을 한 자리에서 살 수 있는 인사동 대표 복합 쇼핑몰 인사코리아 역시 손님은 거의 없었다. 정인숙(가명) 씨는 텅 빈 상점들을 바라보며 “원래 이 시간(오후 1시 30분)이면 사람들이 북적여서 길 건너 상점들이 인파에 안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이날 단체관광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정 씨는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 큰일 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용호 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은 “안 그래도 경기가 쭉 나빴는데 코로나가 한 방을 더 때려버렸다”면서 “생계가 달렸는데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죽을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더 답답한 것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거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상점 안에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비치하는 게 거의 유일한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텅 빈 인사동 거리. 이소아 기자

텅 빈 인사동 거리. 이소아 기자

정 회장은 기자에게 “이 말은 꼭 좀 전해달라”고 했다.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좀 드리고 싶은데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가격도 믿을 수 없게 비싸요. 마스크 사재기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애국하시는 마음에서 제발 좀 (물량을) 풀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추인영·이소아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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