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신지로의 추락, 임종석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일본 정계의 아이돌이라던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8) 환경상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후광, 배우 뺨치는 외모, 명문가에 열광하는 일본 사회의 풍토 덕에 승승장구해온 그다.

하지만 지난해 9월 30대 초스피드 입각이 오히려 독이 됐다. 입각은 본인이 원했지만, 그 다음은 시련이었다. ‘인기’가 아닌 ‘실적’이 중요해졌고, 본격적인 검증의 칼을 마주하게 됐다. 동화 속 왕자님을 대하듯 했던 세상의 눈은 훨씬 엄격해졌다.

글로벌 아이 2/4

글로벌 아이 2/4

과거엔 “심금을 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의 화법엔 “그럴듯하지만 당연한 얘기뿐이고 알맹이가 없다”는 혹평이 쏟아진다. 입각 뒤 처음으로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그는 ‘30년 내에 원전 오염토 최종처분장을 후쿠시마현 밖에 만들겠다’는 정부의 약속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엉뚱하게도 “30년 후면 나는 몇 살일까 지진 직후부터 생각해왔다”로 시작하는 뜬구름 잡는 답변을 내놓았다. “기후변동과 같은 빅이슈를 대할 때는 즐겁고, 쿨하고, 섹시하게 해야 한다”던 유엔 회의 발언도 논란을 낳았다.

그는 입각 전엔 ‘차기 총리 후보’ 조사에서 1위를 휩쓸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지난해 8월 조사에서 29%, 9월 20%로 1위였다. 하지만 11월 18%, 12월 17%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에게 밀리더니, 지난달엔 11%로 폭락하며 3위로 떨어졌다. ‘각료 최초의 육아휴직 선언’ 등 단발성 이슈로 화제를 뿌렸지만 업무적 존재감은 미미했다. 총각 시절 유부녀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보도 등 사생활 추문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이즈미를 탐탁지 않게 여긴 아베 총리가 골탕을 먹이려고 아무 준비도 안 된 그를 빨리 입각시킨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된다. 고이즈미에 대해선 “언제 나서고, 언제 빠져야 하는지 모른다” “실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려야 할 때 분위기에 휩쓸려 제 무덤을 팠다”는 핀잔이 나온다.

한국에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총선 출마와 정계복귀가 큰 관심사라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마음먹은 대로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출마설이 도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바람이 그를 흔드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일부러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부화뇌동하다 본전도 못 건지고 있는 신지로의 사례가 임 전 실장의 최종 판단에 도움이 됐으면 싶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