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 ITC 불공정수입조사국, SK 요청 '기각' 입장 재판부에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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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미국 조지아주 공장 부지 ‘첫삽뜨기’ 행사 모습.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미국 조지아주 공장 부지 ‘첫삽뜨기’ 행사 모습. [사진 SK이노베이션]

ITC 불공정수입조사국 의견서 단독 입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이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ITC 재판부에 제기한 두 건의 요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ITC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미국 ITC는 독립적인 준사업 연방기관으로 독자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기술 유출 특허 침해 소송을 조사하고 있다.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으로 꾸려진 ITC 불공정수입조사국(OUII·Office of Unfair Import Investigations)은 접수된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와 법률적 판단 등을 담아 재판부에 제출한다. ITC 행정판사는 조사국 의견을 상당부분 참고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ITC 불공정수입조사국 의견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2월 중순 ITC에 두 건의 요청서를 냈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LG화학이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배터리 영업비밀 중에서 20가지 이상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별도로 제출한 요청서에선 “소송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소송을 더는 끌지 말고 약식 판결을 내려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한 요청 두 건 모두에 대해 “기각(deny)”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재판부에 보냈다.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영업비밀에 대해서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번 의견서를 통해 LG화학이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영업비밀이 137개에 이른다는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이 제출한 의견서에선 SK이노베이션이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미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도 언급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배터리 기술을 조지아주 공장 가동을 위해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의견서는 “SK이노베이션이 확정적으로 이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의견서는 SK이노베이션이 미국으로 들여온 배터리 샘플도 증거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SK이노베이션(미국 법인)이 수입한 배터리 샘플은 LG화학의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하고 중요한 증거”라고 의견서에 적었다.

LG화학은 사업구조 고도화 및 R&D 강화를 통해 2025년까지 ‘글로벌 톱 5 화학회사’로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LG화학은 사업구조 고도화 및 R&D 강화를 통해 2025년까지 ‘글로벌 톱 5 화학회사’로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이에 앞서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지난해 11월 LG화학이 제기한 조기패소 판결 요청에 대해서도 재판부에 두 차례에 걸쳐 "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당시 “SK이노베이션이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아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일부 증거가 보존되지 못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ITC에서 “기술 탈취는 없었다”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LG화학 출신에 대한 특혜가 없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각종 소송을 통해 SK의 배터리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건 LG화학”이라는 입장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 불공정수입조사국이 ITC 재판부에 전달한 의견서 중 일부. [사진 ITC]

미 국제무역위원회 불공정수입조사국이 ITC 재판부에 전달한 의견서 중 일부. [사진 ITC]

ITC가 LG화학 손들어줘도 미 정부가 거부권 행사 할수도 

재계 3・4위 기업의 배터리 힘겨루기는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은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인력과 기술을 빼가지 않았다”며 맞섰다.

전기차 확산 등으로 배터리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가운데 양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양사 최고경영자가 만났으나 합의를 끌어내진 못했다. 두 기업 모두 배터리를 미래 먹거리로 결정했고, 조 단위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양측 모두 물러설 곳이 없다는 해석이 많다.

ITC의 최종 결정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사소송과 국내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9월 서울 서린동 SK이노베이션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영업비밀 침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ITC가 의견서를 받아들여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도 반전의 여지가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고 싶어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론이 나길 원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배터리 소송은 결국 거부권을 가진 미 무역대표부(USTR) 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ITC 소송 결과에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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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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