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SK이노 증거인멸 정황 드러나"...美 ITC에 조기 패소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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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이 ITC에 제출한 SK이노베이션 내부 e-메일.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란다"고 적혀 있다. [사진 ITC]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SK이노베이션 내부 e-메일.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란다"고 적혀 있다. [사진 ITC]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배터리 기술 유출 소송과 관련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조기 패소 판결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ITC는 독립적인 준사법 연방 기관으로 무역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폭넓고 독자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경쟁사가 소송 제기 바로 다음 날 e-메일을 통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법정 모독 행위가 드러난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ITC가 LG화학의 조기 패소 판결을 받아들이면 올해 초부터 이어진 배터리 기술 유출 소송은 올해 안으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이에 앞서 ITC는 LG화학이 제출한 67페이지 분량의 요청서와 94개 증거목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LG화학은 요청서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해 광범위한 증거인멸을 진행했다”며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LG화학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및 생산 등에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ITC 소송 절차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원고가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을 받아들이면 예비결정 단계까지 진행하지 않고 피고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다.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하여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LG화학은 디스커버리(discovery) 절차 등을 통해 확보한 SK이노베이션 사내 e-메일도 이날 공개했다. 디스커버리 절차는 소송 당사자 양측이 요구한 증거목록을 ITC를 거쳐 상호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가 관련 증거를 공유한다. 여기엔 “PC, 메일보관함, 팀룸에 경쟁사 관련 자료는 모두 삭제 바랍니다. 특히 SKBA는 더욱 세심히 봐 주세요”라고 적혀있다. LG화학은 “올해 4월 8일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한 당일 SK이노베이션은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이날 SK이노베이션이 ITC의 포렌식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G화학은 “ITC가 내린 포렌식 명령에도 한 개의 엑셀 시트만 조사했다”며 “SK이노베이션은 포렌식 진행 시 LG화학 측 전문가도 한 명 참석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조사과정에서 LG화학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등 포렌식 명령 위반 행위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여론전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짧은 입장문을 내놨다. SK이노베이션은 입장문을 통해 “여론전에 의지해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사와 달리 소송에 정정당당하고 충실하게 대응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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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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