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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LG화학, 반년간 칼 갈았다…"SK 배터리 공장 중단은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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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인 수주 전략과 직원 영입에 대해 불만을 가져 왔다. 이번 제소 역시 오랜 두 회사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공격적인 수주 전략과 직원 영입에 대해 불만을 가져 왔다. 이번 제소 역시 오랜 두 회사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기업 간 법적 분쟁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ITC 이달말 조사 개시 여부 결정 #LG 승소하면 SK 미국 수출 못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분쟁에 대한 재계 관계자의 평가다. 지난달 30일,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하면서 양사의 공방은 시작됐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생산·품질관리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미국 해외 법원 제소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양사의 입장문 발표는 여의도 정치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당 간 논평 공방전을 방불케 했다. LG화학은 지난 2일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틀 만에 SK이노베이션의 입장문을 재반박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도 지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은 3일 "경쟁사가 비신사적이고 근거도 없이 SK이노베이션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법적 조치 등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주장했다.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 이번 사안은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고 맞서고 있고 최신 기술과 관련돼 있어 복잡하다. 잘못 알려진 사실관계도 있다. 양사와 전문가를 취재해 문답 형식으로 쟁점을 정리했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배경은 뭔가.
"가장 큰 이유는 30년 가까이 투자한 배터리 산업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런 가운데 두 차례 경고도 먹히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201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려던 핵심인력 5명에 대한 이직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핵심 인력 유출이 이어졌다고 LG화학은 주장한다. 이 회사는 제소에 앞서 2017년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를 통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LG화학의 핵심인력을 대상으로 한 SK이노베이션의 추가 채용이 진행되고 있다고 봤고, 미국 법원에 제소를 결심했다고 한다."
LG화학이 미국 ITC에 제출한 증거물. LG화학은 인력 스카우트 과정에서 경쟁사에 핵심기술이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LG화학이 미국 ITC에 제출한 증거물. LG화학은 인력 스카우트 과정에서 경쟁사에 핵심기술이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LG화학이 ITC와 연방법원에 제출한 증거는 뭔가.
"이번 제소는 LG화학 법무팀이 아닌 특허대응팀이 준비했다. 그만큼 사내에서도 보안 유지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반년 이상 관련 증거를 모았다'는 게 LG화학 관계자의 설명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에 입사한 직원들이 집단으로 공모해 LG화학 선행기술과 핵심 공정기술 등을 유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체 조사를 진행해 이직 전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한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어떻게 반박하나.
"1996년부터 배터리 기술 개발을 시작해 그동안 1조원이 넘는 연구개발비를 들여 자체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정유 산업 분야에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배터리 산업과 인력에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직은 임금 차이에 따른 직업 선택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 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SK이노베이션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2800만원이었다. LG화학 직원의 평균 연봉은 8800만원이다."
LG화학이 ITC와 연방법원에 동시에 제소한 이유는 뭔가.
"먼저 ITC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ITC는 독립적인 준사법 연방 기관으로 무역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폭넓고 독자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ITC의 가장 큰 권한은 지식재산권을 위반한 상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ITC 조사와 연방법원에서의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 연방법원에서 진행되는 절차를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연방법원 절차가 중단되지 않더라도 ITC의 절차가 연방법원보다 빨라 법원의 판결보다 앞선다고 한다. 연방법원이 ITC 조사 결과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ITC의 조사 결과와 판정은 연방법원에서 설득력 있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임성훈 선임외국변호사는 “한국에서 형사와 민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전개 방향은.
"ITC와 미 델라웨어주 소재 연방법원에서 동시에 관련 절차가 진행된다. 이에 앞서 LG화학이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고 보도됐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주법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이 아닌 연방법원이 맞다. 큰 흐름은 ITC의 움직임에 따라 달렸다.  ITC는 제소장 제출 후 30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LG화학이 지난달 30일 제소장을 제출했으니 이달 말에 ITC가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가 시작될 경우 LG화학이 낸 제소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면 된다. 반면 조사 개시가 되지 않을 경우 이와 반대다. 조사가 시작되면 ITC는 연방공보(Federal Register)에 조사 개시 통지를 공개해야 한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조지아공장 기공식 장면. 폴크스바겐의 북미 배터리셀 공급업체로 선정된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첫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조지아공장 기공식 장면. 폴크스바겐의 북미 배터리셀 공급업체로 선정된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첫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 SK이노베이션]

LG화학이 승소할 경우 SK이노베이션 미국 생산 공장 가동이 중단되나.
"당장 가동이 중단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 내 배터리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 ITC는 지식재산권을 위반한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연구개발은 대전시에서 이뤄지고 있다. ITC가 LG화학 주장을 인용해 수입을 금지할 경우 한국에서 개발한 배터리 시제품이나 관련 설계자료 등의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개발한 배터리 신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 공장에서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와 별도로 미국 연방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이 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에 배상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최종 판결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보이나.
"ITC는 조사 개시 통지 이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조사를 마무리하고 판정을 내리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대략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ITC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연방법원 판결은 ITC 판정 이후에 결론이 날 전망이다. 연방법원 판결에 한쪽이라도 불복할 경우 연방항소법원으로 양측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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