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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임금체불 이어 탄원서 강요···허인회, 정부 경고받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27일 임금체불 혐의를 받는 허인회 전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이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중이다. [뉴스1]

지난해 12월 27일 임금체불 혐의를 받는 허인회 전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이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중이다. [뉴스1]

수억원대 임금체불 피의자 허인회 전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56)이 ‘직원들에게 탄원서 제출을 강요했다’는 의혹으로 고용당국의 경고를 받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탄원서 제출 강요 의혹과 관련해 허 전 이사장에게 주의 촉구 공문을 발송했다”고 16일 밝혔다. 당초 대면·전화상으로 강요 행위가 없도록 지도했지만, 의혹이 끊이지 않아 엄중 경고 차원에서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노동청, 대면·전화 이어 공문으로 경고  

앞서 허 전 이사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 피해를 호소하는 전·현직 직원들에게 “회사를 정상화시켜 돈을 갚을 테니 법원에 처벌불원서(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작성하는 문서)를 내달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 대부분이 처벌불원서를 냈고 허 전 이사장은 구속을 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현직 직원 상당수에 탄원서 제출을 강요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젊은 직원들 위주로 “강압적으로 작성 지시를 받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강경모 노무사는 “현직 직원 입장에선 고용주가 부드럽게 ‘처벌불원서를 내는 게 어때’라고 말해도 강요로 느낄 수 있다”며 “강요죄를 적용할 만큼 심각했을지는 수사를 해봐야 안다”고 설명했다.

허 전 이사장은 “처벌불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지만, 피해자들의 자발성에 손상을 끼친 일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다.

15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기존 녹색드림협동조합 사무실. 이사를 가 비어 있다. 박현주 기자

15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기존 녹색드림협동조합 사무실. 이사를 가 비어 있다. 박현주 기자

녹색드림협동조합이 떠난 사무실 한쪽에 산 붕어들이 든 어항과 태양광 패널이 놓여 있다. 박현주 기자

녹색드림협동조합이 떠난 사무실 한쪽에 산 붕어들이 든 어항과 태양광 패널이 놓여 있다. 박현주 기자

피해금액 5억→5억5000만원

허 전 이사장이 강요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사건을 수습하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는 모양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지속적으로 허씨의 임금체불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기소의견 송치된 50여 건(5억원가량) 외에 10여 건(5000만원가량)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녹색드림협동조합은 이달 초 사무실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전농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밀린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일 찾은 기존 답십리동 사무실엔 산 금붕어 여러 마리가 든 어항과 태양광 패널 몇 개 등만 남겨져 있었다. 전농동 새 사무실을 방문하니 허 전 이사장 없이 단 4명이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150여 명이던 총임직원 수는 10여 명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허 전 이사장은 서울고용노동청·서울북부지검으로부터 임금체불 혐의 수사를 받는 동시에 서울 동대문경찰서로부터 횡령·불법 하도급 혐의 수사도 받고 있다. 박진배 동대문서 수사과장은 “사건이 복잡해 최소한 2개월 이상 수사를 해야 결론을 내릴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1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새 녹색드림협동조합 사무실 앞. 박현주 기자

1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새 녹색드림협동조합 사무실 앞. 박현주 기자

임원 “체불임금 갚는 것 어려워…답답”

녹색드림협동조합의 한 임원은 “피해자들에게 이달 말까지 체불임금을 정리한다고 약속했는데 지키기 어려운 상태”라며 “약속을 믿고 처벌불원서를 써준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줄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임금체불을 신고했다가 처벌불원서를 쓰면 다시 사건화할 수 없다.

김용현 서울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1과장은 “허 전 이사장에 대한 사법처리 외에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허 전 이사장 측의 현금성 자산에 대한 가압류와 소액체당금 청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체당금 제도란 체불 임금을 정부에 청구하면 일부를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대신 지급하고 이후 사업주가 변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김민중·박현주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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