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맞는 남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통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자를 남자에게 종속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이 사용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멀리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을 작게 만드는 전족(전족)이 1천년 가까이 실시되어 왔는가하면 중세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남편이 장기간 집을 비울 때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조대라는 것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퍼다제도는 여성을 직계가족 이외의 남성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집안에 가두어 격리시키는 방식의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일부 아시아의 회교국가들 가운데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집트나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 케냐, 기니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사춘기 이전의 여자아이들에게 여성의 일부를 절제하는 풍습이 그대로 존속되어 오고 있다.
가정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성차별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법이 바로 폭력과 강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정에서 부부간에 일어나는 폭력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은밀히 행해지는 게 보통이다.
『폭력과 가정』이란 책을 쓴 스타인메츠와 스트라우스라는 두 사회학자가 구타당하는 아내들을 조사하기 위해 4백여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부간의 폭력에 관한 글은 소설에서조차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매맞는 아내』의 저자 델마틴도 아내 구타는 아동학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회문제인데, 사람들은 어린이가 가혹한 행위를 당했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지만 그 피해자가 여성일 경우는 이상하리만큼 침묵을 지킨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이제 커다란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몇 년전 「여성의 전화」가 생겨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한 여성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요즘은 아내에게 폭행 당하는 남편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 신경정신과 교수의 조사로는 아내에게 꼬집히거나 할퀴는 등「폭행」을 당하는 남편이 23·2%, 거의 4명 중 한명 꼴이다. 매맞는 아내 37·5%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그 통계가 정확하다면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