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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찬만 있고 성찰이 없는 대통령의 신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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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의 어제 신년사는 ‘마이 웨이’ 국정 기조를 올해도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쓴소리와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에 힘을 실었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대북 정책에서도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지지층을 겨냥한 ‘총선용 신년사’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안보 인식 걱정 #반대 얘기도 들어야 반쪽 정치 벗어나

문 대통령은 9000여 자 분량의 신년사에서 과반(4600여 자)을 경제·민생 이슈에 할애했다. 하지만 냉철한 진단이나 국정 기조의 전환에 대한 언급 없이 현실과 먼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고용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 명 늘었으며, 청년 고용률이 1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또 “저소득 1분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세로 전환됐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규제자유특구 지정 등 혁신에서의 성과도 열거했다.

현실은 180도 다르다. 고용은 여전히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일자리는 나랏돈을 쏟아부은 어르신 임시직만 늘었다. 경제의 허리인 40대 취업자는 25개월 연속 감소 일로다. 주머니가 얇아진 청년들이 단시간 아르바이트로 쏟아져 들어가며 ‘고용률 상승’이란 착시 효과를 낳았다. 1주일에 36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일자리는 말라붙고, 17시간 이하 초단시간 취업자만 증가했다. 치솟은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주들이 종업원 수와 일하는 시간을 줄인 탓이다. 또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해서 번 돈이 는 게 아니라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실패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운 것이다. 노동계의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그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월 임금을 감소시켰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혁신 분야 역시 현실은 녹록지 않다. 150만 명 넘게 이용하는 ‘타다’는 사업할 길이 막히기 직전이다. 현대자동차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한국이 아니라 미국 LA에서 시작했다. 규제는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기업을 옥죄어 온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해외로 나가는 ‘투자 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이 체감하는 건 경제·산업 정책의 성과가 아니라 정책 실패의 씁쓸한 결과물이다. “정책의 역주행을 멈추고 U턴해야 한다”는 주문은 그래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도쿄 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사업 실현’ 등 장밋빛 사업들만 줄줄이 언급했다. 신년사에서 ‘비핵화’란 단어는 실종되고 말았다. 당장 북한이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고, 국정원이 “북한 핵 포기 불가”라는 분석 결과를 국회에 보고했다고 알려진 시점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제안과 노력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지, 답답한 심정이다.

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정부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정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문 대통령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진영 정치, 반쪽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대통령의 변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