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할리우드 장벽 넘어선 봉준호의 ‘기생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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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의 또 다른 역사를 썼다. 어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우리 영화 사상 처음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 한국 영화의 힘을 알린 기념비적 사건이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상과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양대 영화상이다. 비록 기대했던 감독상·각본상 수상엔 실패했지만 세계 주류 영화계에 우뚝 선 한국 영화의 저력을 입증했다. 지난해 100년을 기념한 우리 영화계 전체가 축하할 일이다.

한국 영화 첫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쾌거 #BTS에 이어 한류 동력 계속 키워가기를

‘기생충’의 이번 수상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세계 최고 예술영화제인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데 이어 상업영화 본거지인 할리우드에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선언했다. 충무로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쾌거다. 2004년 ‘올드보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이후 유럽에서 꾸준히 주목 받아 온 한국 영화지만 비영어권 작품에 배타적인 할리우드에선 그간 저평가돼 온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계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셈이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에도 뚜렷한 시사점을 남겼다. 지구촌 전체의 현안인 사회 양극화 문제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 덕분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못 가진 자들 사이의 갈등 등 인간 군상의 희비극에 평론가는 물론 일반 관객이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한국적 상황을 한국어로 풀어내되 이를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글로컬’(글로벌+로컬) 전략의 본보기다. 골든글로브를 포함해 각종 해외영화 무대에서 30여 개 상을 받은 게 우연이 아닌 게 분명하다. 봉 감독도 이번 수상 소감에서 “1인치 정도 되는 (자막)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생충’은 산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라는 봉 감독의 소감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남겼다. 한국 관객 1000만 명 돌파에 이어 북미에서도 지난 5일 현재 2390만 달러(약 279억원)를 벌어들였다. 외국어 영화 역대 흥행작 8위에 해당한다. 프랑스·호주·브라질 등 40개국에서 개봉하는 기록도 세웠다. 세계와 통하는 문화 콘텐트의 파워다.

‘기생충’의 영광은 오늘에 끝날 일이 아니다. 제2의 ‘기생충’이 잇따르며 K팝·K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K무비의 도약에 불을 댕겨야 한다. BTS와 함께 한류의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고대한다. 미국 CNN도 최근 “한류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만큼 한국의 대중문화가 확산했다.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음 달 9일 열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기생충’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