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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 - 이란 충돌에 따른 비상 상황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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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의 이란군 거물 암살로 빚어진 중동의 전운이 예사롭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3일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를 드론으로 살해했다.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아 온 그가 죽자 이란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물론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까지 나서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공격받을 경우 이란 내 52개 주요 목표물을 공격하겠다고 응수했다.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유가 오르고 호르무즈 위험해져 #청해부대 파병, 신중한 검토 필요 #북한의 경솔한 도발도 꼭 막아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트럼프는 솔레이마니 제거라는 극약 처방을 신중히 쓰는 게 옳았다. 트럼프의 전임자인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역시 이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란의 보복을 우려해 남겨 놨던 옵션이었다. 이란의 공격과 군사적 위협이 도저히 놔둘 수 없을 지경이었다면 모를까, 소수의 인명 피해가 전부인 상황에서 정상 국가의 군부 실세를 암살한 것은 과도한 대응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군사력에서 미국과 상대가 안 되는 이란이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이란이 가만있을 거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이라크 등 같은 시아파 국가를 이용해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확실한 건 중동, 나아가 전 세계가 솔레이마니 암살로 더 위험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트럼프 행정부는 고조하는 미-이란 간 갈등을 부채질하는 대신 위기를 가라앉히도록 힘써야 한다.

이번 중동발 위기는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중동의 불안으로 당장 유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3일(현지시간) 런던 선물거래소의 3월물 브렌트유는 4.17%나 오른 배럴당 69.16달러에 거래됐다. 특히 이란은 미국과의 갈등이 커지면 세계 원유의 주요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유가가 급등할 공산이 크다.

미-이란 간 분쟁으로 가장 위험해질 지역이 호르무즈해협이다. 바로 정부가 미국 요청에 따라 청해부대 파병을 검토 중인 곳이다. 만약 청해부대를 여기에 보내면 대이란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이란 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란은 우리의 적대국이 아닐 뿐만 아니라 70, 80년대 중동 붐의 시발점이 됐던 나라다. 경제 제재가 풀리면 거대한 시장이 될 약속의 땅이다. 그런 만큼 장병들의 안전 등을 고려해 호르무즈 파병도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일본이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호르무즈해협이 아닌 오만 및 아덴만 인근 공해(公海)에 해상자위대를 보내기로 한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가 한반도 문제에 끼칠 파급 효과도 면밀하게 판단해 대응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크게 위축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면에 미국의 관심이 이란으로 쏠리는 틈을 이용, 북한이 도발할 거라는 관측도 있다. 지금으로선 어느 쪽 가능성이 높다고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명한 건 어떤 형태의 도발이라도 한반도 상황에 득될 게 없다는 사실이다. 잘못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코피 작전’과 같은 군사적 대응 카드를 쓸지도 모른다. 정부는 북한이 현실을 오판하지 않도록 여러 방법과 통로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만은 철저히 막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