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만 '할리 매니어'가 무보수 영업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미국의 대형 오토바이(배기량 660㏄ 이상) 제조업체 할리데이비드슨(이하 할리)은 독특한 회사다.

이 회사엔 영업사원이 별도로 없다. 할리 소유자 동호회인 호그(H.O.G.할리오너스클럽) 100만 회원들이 친구나 친지에게 구입을 권유해 판매가 이뤄진다. 판매 비용이 따로 들지 않다 보니 이 회사는 최근 5년간 영업이익률이 20%를 넘는다.

지난해엔 5조1000억원 매출에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4월에는 주식 시가총액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GM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 회사 임직원 대부분은 독수리.해골 등의 무늬가 들어간 상의와 청바지나 블랙 진을 입고 근무한다.

할리의 창업 일가 4세인 빌 데이비드슨(45.사진) 생산담당 총괄(부사장)을 미국 밀워키 본사에서 만났다. 할리 창업 일가의 국내 언론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7세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다고 했다.

-1903년 창업 이후 창업 일가가 줄곧 경영에 참여해 왔는데.

"할리의 명성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버지(윌리 G 데이비드슨)는 70대지만 디자인 담당 총괄 부사장을, 여동생(카렌 데이비드슨)은 의류와 액세서리 사업부를 맡고 있다. 내 자식도 마찬가지로 할리에서 일할 것이다. 주주.임직원은 물론 고객은 이런 가족 경영이 이어지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80년대 경영 부진으로 도산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경제 공황이 닥친 상황에서 품질을 앞세운 일본 메이커들의 공략으로 위기를 맞았다. 솔직히 할리는 80년대 초반까지 고품질 오토바이를 생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83년 13인의 대주주가 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제품 라인을 대폭 변화시키고 신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이 무렵 호그가 결성됐다. 호그 회원들이 할리를 살려야 한다며 판매에 나서준 덕분에 회생할 수 있었다."

-최근 10년간 순이익증가율이 연평균 18%나 되는데 비결이 있다면.

"앞에서 말한 호그 덕분이다. 회사 전체 예산에서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1.2%(지난해 66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경쟁업체와 달리 스포츠나 이벤트 등에 스폰서를 하지 않는다. 이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 100만 호그 멤버는 한마디로 할리의 홍보맨이자 무보수 영업사원이다. 이들이 할리 판매를 주선했다고 해서 수당 같은 것을 주지는 않는다. 또 90년대 말 이후 소득이 급증하면서 자유와 레저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할리를 경험하겠다는 잠재 고객이 늘고 있다."

-할리가 한결같이 지켜온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디자인(Look).소리(Sound).승차감(Feel) 세 가지다. 엔진으로 움직이는 최고의 예술작품이라고나 할까. 강인한 디자인과 독특한 배기음,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말을 타는 것과 같은 생명력 있는 진동, 이 세 가지는 경쟁사들이 흉내를 낼 수 있을지라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에선 할리를 타는 사람들이 배기관을 시끄럽게 개조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 지나치게 튜닝(개조)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사회 전체를 존중하며 즐기는 취미 생활의 가치를 느끼게 하려 교육을 하고 있다."

밀워키=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