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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광부 아버지와 교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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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준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영 사회2팀 기자

김준영 사회2팀 기자

A의 아버지는 채용 비리 뉴스가 나올 때면, 말없이 고개를 떨구신다고 한다. 2년 전, 5년간 다니던 강원랜드에서 부정 청탁 채용자로 해고당한 A는 이제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다. 태백에서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는 2012년 A가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교회 지인인 강원랜드 직원에게 “아들이 이력서를 넣었다. 잘 좀 봐달라”고 말을 건넨 사실이 있었고, 이는 해고의 단초가 됐다.

시계를 돌려, 2017년 9월 언론 보도로 드러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은 전국을 분노케 했다. 2012~2013년 강원랜드 입사자 518명 중 493명(95%)이 특혜 채용이며, 현직 야당 국회의원 2명이 연루됐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맞물려 검찰 수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듬해 3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속도를 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는 이날 검찰 수사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부정 채용자 226명 전원에 대한 직권 면직 방침도 밝혔다.

보름만인 같은 달 30일 회사는 A에게 ‘채용취소 및 무효 통보’를 보냈다. 226명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200여명이 그렇게 짐을 쌌다. 강원랜드 특성상 대부분 태백·정선 등에서 평생을 살아온 폐광촌 청년들이었다.

본인이 알았든 몰랐든, 부모가 청탁 압력을 줄 영향력이 있든 없든, 부정 청탁은 나쁜 게 맞다. 그게 원칙이라면 말이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을 낸 한 강원랜드 해고 직원에 대해 “본인이 내부적 부정행위를 알지 못했더라도, 채용절차의 신뢰성 하락과 공정성의 중대한 침해 (후략)”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다만, 이것이 정말 누구에게나 동등한 원칙인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남는다. 교수 부모(조국·정경심)가 인맥을 동원해 각종 허위 스펙을 만들어 입시에 활용하고, 대리시험까지 쳐준 정황이 드러났지만, 무탈하게 학업을 이어가는 조씨 남매를 보면서다. 이 중 누나는 최근 의전원 4학년 진급시험을 보고 합격했다고 한다. 그는 곧 의사가 될 것이다. A는? ‘적폐 채용자’ 꼬리표로 한동안 취업 시장을 전전하다 최근 한 소기업에 들어갔다.

어쩌면, 지금 우린 우리 사회의 가장 음습한 부분을 마주한 건지도 모르겠다. 조국 교수의 말처럼. “내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노력의 결과가 결판나는 식으로 흐름이 바뀌는 건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다”

김준영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