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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노동 vs 기술혁신 저해…‘로봇세’ 논란 팽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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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호 04면

외국기업 과세 논란, 무역전쟁 조짐 

커피를 나르고 있는 로봇. [중앙포토]

커피를 나르고 있는 로봇. [중앙포토]

정보통신기술(ICT)의 눈부신 발전은 때론 논란을 낳는다. 새로운 개념의 세금 도입 문제가 그런 예다. 이른바 ‘로봇세(robot tax)’가 대표적이다. 로봇세는 제조업의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산업용 로봇을 근로자로 보고, 이들이 노동으로 생산해내는 경제적 가치에 매기는 세금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2017년 외신 인터뷰에서 “인간처럼 일을 하는 로봇의 노동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유럽의회는 앞서 2016년 로봇세 도입을 위한 초안을 만드는 데 나서기도 했다.

유럽의회, 로봇에 법적 지위 부여 #“도입 땐 기업 경쟁력 하락” 지적 #한국 6년 내 노동력 40% 대체 #과기부 “다양한 옵션 중 하나”

로봇세가 도입되면 로봇을 소유한 기업이 각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 도입 찬성론자들은 다양한 산업용 로봇이 기업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주면서도 납세 의무에선 자유로워, 기업이 사람을 고용했을 때 각국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소득세 등에 누수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또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실직자가 속출하면 이들을 위한 재교육 등에 투입할 재원을 로봇세로 충당할 수 있다고 당위성을 강조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 연말까지 AI와 로봇 등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510만여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로봇세 도입을 검토했던 유럽의회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일단 보류했지만, 2017년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 인간(electronic person)’이라며 로봇에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로봇세 도입 찬성론자들은 이를 두고 “로봇의 인격권을 인정해 앞으로 세금을 매길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와 달리 반대론자들은 로봇세 도입이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산업뿐만 아니라 자동화를 진행 중인 많은 산업 분야에서 경제적 부담이 커져 성장이 위축될 것”이라며 “로봇세를 도입한 국가도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로봇세 논란에서 줄곧 반대 입장을 나타냈던 제임스 베슨 미국 보스턴대 교수 역시 “로봇세를 도입하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이 위축돼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충분한 합의와 법제도 정비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의회가 로봇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아직 세계 각국에서 로봇세 도입을 위한 뚜렷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에서도 로봇세를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강철승 한국수산정책포럼 대표(전 중앙대 교수)는 “토지나 주택, 자동차처럼 로봇도 인간이 소유한 재산으로 보고 로봇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부가가치세법에선 무인 자판기(자동판매기)에도 사업자등록번호를 부여해 세금을 매긴다”며 “로봇도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로봇세 부담 탓에 기업들이 로봇을 덜 쓰거나 못 쓰게 되면 다른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그렇지 못할 경우 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로봇세가 해결책이라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달 17일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제53회 국무회의에서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가치 최대 455조원어치 창출 등을 목표로 세웠다. 이날 브리핑에서 최기영 과기부 장관은 “경제에서 AI 활용이 늘어남에 따라 활력이 제고되면 로봇세 등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나 차차 고려해나갈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 장관은 “정부에서 (현재) 검토하고 있진 않다”며 “4차 산업혁명이 급속하게 진행되면 다양한 옵션 가운데 하나로 검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창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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