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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덩어리 세상, 그래도 함께 살자는 어느 꼬막집 부부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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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원 강릉시 ‘엄지네 꼬막집’ 김미자(오른쪽)·최근영씨 부부가 지난 28일 일손을 멈추고 손님이 가득찬 가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강원 강릉시 ‘엄지네 꼬막집’ 김미자(오른쪽)·최근영씨 부부가 지난 28일 일손을 멈추고 손님이 가득찬 가게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강정현 기자

입만 열면 근사한 말을 쏟아내는 지체 높은 분들의 민낯을 수없이 목격한 한 해였다.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엄지네 꼬막집’ 김미자·최근영씨 #쫄딱 망했다가 재기해 2억 기부 #“미루면 영영 기부 못할 것 같더라” #꼬막무침에 밥 비벼먹는 것 보고 #꼬막비빔밥 메뉴 내놨더니 대박 #포차로 시작 4년 만에 3층 건물로 #기부할 돈으로 아이들 집 장만? #돈 귀한 줄 모르게 키우면 자식 망쳐 #월급·알바비도 직원과 똑같이 줘

권력·부·지위를 가진 이들이 자기 자식 꽃길만 걷게 하려고 편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는 것을, ‘정의의 사도’로 행세하던 분이 실은 ‘욕망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부모 찬스’ 장학금, 표창장 위조, 채용 청탁, 재개발 지역 투기, 의원 지역구 세습 …. 염치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악다구니가 차지한 것처럼 보였던 2019년이 쓸쓸히 저문다.

그래도 남의 몫 탐하지 않고 양심껏 산, 입이 아니라 삶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말한 사람도 있었다. 강릉시에 사는 김미자(53)·최근영(61)씨 부부도 바로 그런 이웃이다. 부부는 ‘엄지네 꼬막집’ 주인이다. 열 명 중 두세 명은 ‘아하, 거기!’ 할 것이다. 지난 2월과 4월, 부부는 각기 1억원씩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그 돈은 강릉의 집 한 채 값이다.

지난 27일 오후 앞치마를 두른 부인 김씨는 가게 입구에서 손님들에게 대기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아니, 뭐 별로 할 얘기도 없는데”라며 쑥스러워하는 김씨와 손님 안내에 분주하던 최씨를 2층 대기실에 앉혔다. 이 부부가 ‘IMF 사태’ 때 쫄딱 망해 월세방을 전전하며 떡볶이 장사를 했다는 얘기는 이미 듣고 갔다.

“사업 망하고 강릉 온 지 10년 … 바다에 발도 못 담가봤어요”

‘엄지네 꼬막집’ 주인 최근영씨가 28일 부인 김미자씨 곁에서 경포대에 설치된 종을 쳤다. 강릉으로 10년 전에 온 부부는 이날 처음 경포대 해수욕장 모래를 밟았다. 강정현 기자

‘엄지네 꼬막집’ 주인 최근영씨가 28일 부인 김미자씨 곁에서 경포대에 설치된 종을 쳤다. 강릉으로 10년 전에 온 부부는 이날 처음 경포대 해수욕장 모래를 밟았다. 강정현 기자

김미자·최근영씨 부부의 과거는 드라마틱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었다. 이야기 중에 “그냥 세상 뜰까 하는 생각도 했다”는 말도 나왔다.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최씨는 인하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아파트·상가 건설 현장을 누비다 마흔이 된 1997년에 회사 임원이 됐다. 당시 그랜저보다 비싼 국산 승용차 엔터프라이즈를 몰았고, 서울 방이동의 70평대 빌라에 살았다. ‘58년 개띠’는 거침없이 달렸다. 회사를 나와 건설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때를 잘못 만났다. 상가를 여러 곳에 지었는데 시행업체들이 부도가 났다. 받을 돈은 못 받고 줄 돈은 산더미였다. 파산했다. 집이 넘어갔다. 방이동 지하에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얻었다.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들은 최씨 어머니가 맡았다. “지하 방에 둘이 앉아 술을 마시다 취해 잠들곤 했다. ‘몹쓸 생각’도 했는데, 내가 삼겹살집에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김씨의 기억이다.

외환위기 때 파산해 떡볶이 장사

얼마 뒤 부부는 중고 미니 트럭을 사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떡볶이·순대를 팔았다. 최씨는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주변 가게에서 욕하고, 신고했죠. 미안하면서도 원망스럽고,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웠습니다.” 부부는 김씨 고향인 충북 제천시에 가게를 차렸다. 외진 곳이라 손님이 적었다. 그 뒤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강릉 동부시장에 실내 포장마차를 열었다. 새벽까지 장사하고, 장 보러 가고, 낮에는 음식 준비를 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교대로 세 시간 정도 토막잠을 자며 일해도 돈을 모을 수는 없었어요.”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대박’이 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었다. “꼬막무침에 밥 비벼 먹는 손님이 많아 꼬막 껍데기를 다 벗긴 뒤 밥에 비벼서 내놓아 봤어요. 그 뒤로 젊은 손님들이 막 몰려오는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연신 찍더라고요. 연예인들이 와 방송도 찍고요.”

엄지네 꼬막집은 2018년에 강릉 동부시장에서 포남동 주택가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3층짜리 건물을 샀다. 그곳이 본점이다. 그 뒤 인근의 한 건물도 매입해 1호점을 냈다. 속초시 엄지네 꼬막집은 최씨 남동생의 점포이고, 서울과 경기도 등에 있는 8개 분점은 김씨 부부와 전남의 한 어업인 조합이 만든 회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부부는 건물 두 개와 주차장 부지 하나를 갖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도합 20억원쯤 되는데, 그중 절반은 은행 대출로 충당했다고 한다. 부부는 본점 3층에 산다. 최씨 노모와 두 아들은 그 옆 건물에 세 들어 산다. 매달 월세를 낸다.

“가게 이만큼 키워준 게 고마워 기부”

지난 2월 김미자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탁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지난 2월 김미자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탁해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부부의 큰아들(33)은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본점에서 손님 응대와 계산 일을 한다. 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들(25)은 주말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기부 대신에 자식들에게 집 사 줄 생각은 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김씨가 이렇게 대답했다. “돈 귀한 줄 모르게 키우는 게 자식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들 월급과 아르바이트비도 다른 직원과 똑같은 기준으로 줘요.” 다시 “대출금 이자도 낼 텐데 기부보다 그게 먼저 떠오르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최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고요, 그런데 ‘나중에, 나중에’ 하면 결국 못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 일(기부)은 우리가 이렇게 살도록 해 준 손님들, 가게를 널리 알려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고요, 우리가 힘들었을 때를 겪어서 어려운 사람들 사정을 조금 압니다.” 이 식당에서 일하는 박선옥(42)씨는 사장 부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는 보통 가게들보다 월급을 후하게 줘요. 한 번은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얘기했더니 월급날 조금씩 갚으라며 바로 1000만원을 빌려줬어요. 마음이 따듯한 분들이에요.”

부부의 선행은 2억원 기부에 그치지 않는다. 인근 청소년복지센터에 매달 100만원을 전한다. 지역 어르신 난방비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 4월 속초 화재 때는 1000만원을 기탁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부부는 최근 연말 성금으로 500만원을 냈다.

강릉으로 온 지 10년. 부부는 동해를 오며 가며 보기만 했지 바닷물에, 모래사장에 발을 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젠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다니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김씨는 “여권도 없다”고, 최씨는 “여동생이 캐나다에 사는데 한 번도 못 가 봐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부부에게 2020년 새해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김씨가 “조용한 데 가서 푹 쉬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디로?”라고 질문하니 “남편 고향 근처 시골”이라고 답했다. “푹 쉰다는 게 얼마나?”라고 재차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2박3일쯤요.” 최씨는 “두 손자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부부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이상언 논설위원 lee.sang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