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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양심 뒤엎은 합헌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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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의 중국침략은 「침략」이 아니라 「무력진출」이다. 「남경대학살」은 군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학살한 것 같은 인상을 주니 표현을 바꿔라』
지난 82년 여름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내 여론을 들끓게 했던 일본 「교과서 검정문제」가 한 일본인학자의 끈질긴 소송으로 법정에 올려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제3차 이에나가 (가영) 교과서 소송에 대한 판결이 3일 동경에서 내려졌으나 핵심부분에 대해서는 왜곡부분을 그대로 인정해 앞으로 국제적인 분쟁의 씨앗을 남기고있다.
이날 동경 지방재판소 민사38부 (가등화부 재판장)는 교과서검정의 위헌성을 주장, 80년대 두 차례의 검정을 대상으로 정부측에 2백만엔 (약1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에나가 사부로 (가영삼낭) 동경 교육대 명예교수에게 『검정은 합헌이나 문부성 장관의 재량권에 남용이 있었다』고 10만 엔을 정부가 지급토록 했으나 사실상 내용적으론 패소판결을 내렸다.
이번에 이에나가 씨가 소송대상으로 삼은 역사상의 쟁점은 ①중국의 대륙침략 ②남경대학살 ③세균전부대 (731부대) ④오키나와 전쟁 등 8가지다.
일본문부성은 지난80, 83년 두 차례 검정에서 이에나가 씨가 집필한 고등학교용 교과서 『신 일본사』(삼성당)가운데 이 부분과 관련한 기술을 수정, 또는 삭제하도록 지시했었다.
우리 나라에서 교과서문제가 일어난 것도 바로 80년도 판 검정본을 둘러싸고서 였다. 검정교과서에 나타난 역사왜곡사실을 쟁점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대륙침략=이에나가 씨의 원고 본은 『중국에서는 서안사건을 계기로 국민당정부와 공산당의 항일통일전선이 성립,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중국주권을 회복하려는 태도가 강경했다』고 되어있으나 일본 문부성은 83년 검정 때 「침략」은 평가를 포함한 용어이므로 원고 본의 다른 곳에서처럼 보다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을 통일하면 어떤가』로 개선의견을 냈다.
이에나가 씨는 이에 불복, 두 차례나 거부서를 낸 끝에 원고본 그대로 합격.
▲남경대학살=원고본은『남경점령직후 일본군은 다수의 중국군민을 살해했다. 남경대학살이라고 부른다』로 된 것을 80년 문부성 검정에서 『점령 직후에 군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학살을 한 것처럼 읽힐 수 있으므로 표현을 바꾸라』고 해 결국 『일본군은 중국군의 격렬한 항전을 격파해가면서 남경을 점령, 다수의 중국군민을 살해했다』고 수정.
이밖에도 ▲731부대 ▲오키나와 전쟁부분에 대해서도 문부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본내용의 일부가 삭제 또는 수정됐다.
이에나가 씨는 이 같은 문부성 검정제도에 항의,『현행의 교과서 검정제도 그 자체가 헌법이 보강하는 교육의 자유나 학문·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으며 『수정·개선의견은 검정기준에서 명백히 일탈하고있는 경우에 국한해야 한다』고 하여 문부성장관이 재량권을 남용한데 대해 소속을 제기해 왔다.
이날 판결에서 가토(가등화부) 재판장은 검정제도에 대해서는 『학문·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므로 합헌』이라고 했지만 「초분대」 부분은 문부성 장관이 재량권을 남용했으므로 위법이라고 판단, 이에나가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에나가 교수가 소송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지적한 8개 부분 중 1개만 인정한 것으로 사실상 이에나가 교수의 패소로 간주돼 교과서 검정시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경=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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