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씨와 대질신문 오길남씨, 회견내용 반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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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학자 송두율씨와 1970, 80년대 독일 베를린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중 85년 가족과 함께 입북했다가 86년 혼자 탈북, 92년 입국 전향한 오길남(61.사진)씨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날 宋씨의 회견 내용에 불쾌한 입장을 보였다.

宋씨는 전날 회견에서 "吳씨의 입북을 권유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탈북 후 재입북을 강요 또는 협박한 적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吳씨와의 대질신문은 녹취돼 있으니 이를 들으면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吳씨는 "그는 투지가 강하고 노련하지만 나는 모질지 못하고 어눌한 편이라서 국정원에서 강하게 따지지 않았을 뿐, 그가 우리 가족의 북한행을 권유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吳씨는 "대질신문에서도 宋교수는 뒤집고 시인하고 부인하기를 되풀이했다"면서 "나와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내가 쓴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란 책을 탐독하고 들어온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宋씨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宋씨가 국내의 혼란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버텨서 군사독재에 대항해야 하지 않겠느냐''윤모씨와 프랑스의 許모씨도 북으로 갔는데 우리가 기댈 곳이 어딘가'라고 입북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吳씨는 "대질신문에서 宋씨를 보고 '내가 죽은 다음에 들어오지 왜 지금 와서 나를 괴롭히느냐. 내가 모질지 못해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따지지 못하지 않느냐'고 하니 말을 못 하더라"고 말했다.

吳씨는 "宋씨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단어의 철학''끊음의 철학'을 실천에 옮겨 학자의 신분으로 진짜 학문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며 "독일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를 키운 베너(Wehner)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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