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손님 많을수록 감정 노동자 우울감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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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중앙포토]

감정노동자. [중앙포토]

흔히 '감정노동자'로 불리는 고객 응대 근로자들의 정신 건강이 손님 태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화난 고객과 많이 마주칠수록 우울감ㆍ수면장애 등을 겪을 위험이 커졌다. 이완형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이 2017년 제5차 근로환경조사에 참여한 남녀 근로자 2만3128명을 분석한 결과다.

이완형 교수팀, 남녀 근로자 2만3000여명 분석 #화난 고객 늘 대하는 여성, 수면장애 위험 3.8배 #직장서 항상 감정 누르는 남성, 우울 위험 2.3배 #"회사가 직원 정신 건강 보호할 체계 마련해야"

연구팀은 조사 항목을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화가 난 고객을 챙긴다", 다른 하나는 "직장에서 내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였다. 첫번째 항목은 '항상 그렇다'와 '거의 없다'로 응답자를 구분했다. 두번째 항목은 '항상' '가끔' '거의 없다'로 분류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1년간 우울감과 불안증, 수면장애 등 정신적 문제를 겪었는지 조사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고객을 ‘기분 좋게’ 대해야 하는 근로자들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난 고객을 항상 마주친다고 답한 여성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우울감 겪을 위험이 2.9배 높았다. 불안감을 겪을 위험은 2.6배, 잠을 들기 어렵다(수면장애)는 비율은 3.8배까지 뛰었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난 고객을 자주 대하는 남성 근로자가 수면장애를 겪을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4배 높게 나타났다.

감정노동에 노출될수록 우울증 위험이 커졌다. [사진 pixabay]

감정노동에 노출될수록 우울증 위험이 커졌다. [사진 pixabay]

일터에서 본인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고객에 맞춰줘야 하는 특성도 정신 건강에 해를 끼쳤다. 직장에서 항상 감정을 억누른다고 답한 남성 근로자들은 거의 없다고 답한 그룹에 비해 우울감 확률이 2.3배 컸다. 불안증과 수면장애 등도 마찬가지로 위험성이 높아졌다. 여성 근로자도 같은 상황에서 정신 건강 이상을 겪는 비율이 최대 2.3배까지 상승했다.

연구팀은 평소 과도한 스트레스에 꾸준히 노출될 경우 뇌 속 스트레스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우울감ㆍ불안증 등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으로 봤다. 이완형 교수는 "본인 감정을 자제하고 손님 불만을 들어줘야 하는 고객 응대 근로자들의 감정 노동은 정신적 문제와 뚜렷한 연관성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서비스 근로자들이 겪는 정서적 스트레스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회사는 직원들의 노동 강도를 객관적으로 분류하고 정신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대한의학회지 최신호에 실렸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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